정부의 신용불량 전과기록 삭제 정책에 금융기관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특히 금융기관 부실화가 우려된다며 신용카드 가두호객을 금지하는 등 카드 발급요건을 강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부실채권 발생억제의 가장 큰 수단인 신용관리를 느슨하게 하라고 강요하고 있어 금융기관들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불평을 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이달 초 은행연합회의 은행공동전산망에 등록된 108만명의 신용불량자가 전격 사면되면서부터. 신용불량자 증가가 사회문제로 부각되자 부담을 느낀 집권 민주당과 정부는 가장 손쉬운 신용불량 기록삭제를 해법으로 택한 것이다.
그러나 은행연합회 자료는 대부분 지워졌으나 신용카드사의 자체 수집정보와 카드사간 연체정보 교환 등으로 인해 신용사면자 가운데 상당수는 여전히 카드발급을 거부당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은행연합회의 신용불량 정보를 카드사들이 삭제했는지를 확인하는 현장점검과 병행해 9일과 10일 카드사의 신용관리 책임자들을 소집해 현재 연체중인 사람을 제외한 신용불량 경력자에 대해 불이익을 주지 말라고 요구했다. 버티던 카드사들도 결국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카드사중 일부는 신용불량자 정보를 따로 보관했다가 나중에 상황이 바뀌면 다시 활용하겠다는 속내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카드사 관계자는 오랜 기간동안 많은 돈과 인력을 들여 확보한 귀중한 연체정보를 그냥 지울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같은 신용불량 정책에 대해 금융기관들은 납득할 수 없는 조치라는 반응이 지배적.
한 외국계 금융기관 관계자는 신용불량자를 신용우량자와 똑같이 대우하라는 것은 위험관리를 기본으로 하는 금융의 기초도 모르는 비상식적인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수십만명의 신용불량 경력자들이 다시 카드를 발급 받게 되면 카드 관련 연체율이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카드사 관계자는 돈을 빌려줄 것인가, 말 것이냐는 금융기관이 결정할 사항이지 정부가 관여할 성격이 아니다면서 과거 은행이 정부의 지시에 따라 부실한 기업체에 돈을 빌려줬다가 부실은행이 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용불량자가 다시 연체할 확률이 8090%에 이르기 때문에 지금의 정부 정책은 다시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게 될 것이라며 위험이 높은 사람에게는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방식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