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의약분업 실시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파탄에 대한 감사에서 보건복지부 실무자들의 잘못을 밝혀내고 국과장급 등 7, 8명의 문책을 요구키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보건복지부가 예상되는 부작용을 축소 은폐했고 의료수가를 과다 인상해 재정위기가 가속화됐다는 것이다.
감사원이 보험 운영의 문제점 파악과 대안 제시를 위해 복지부 공무원의 업무 추진 과정을 감사해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잘못을 확인했다면 책임을 묻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보험 재정 파탄 위기에 복지부 실무자들도 일정부분 책임을 면할 수는 없겠지만 과연 그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일인지에 대해서는 따져봐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 파탄의 큰 원인은 근본적으로 정책 판단과 결정의 잘못이지 정책 수행 과정의 잘못만은 아니다. 그동안의 의료파동에서 보았듯이 의약분업과 보험통합은 무리하게 추진됐다. 정부 여당은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이라고 해서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의료개혁을 다그쳤다. 감사원 지적사항의 하나인 보험수가 인상도 의료계 파업 수습책의 하나로 국무총리 주재 장관회의에서 결정됐다.
대통령의 개혁과제인 의료개혁 정책에 반론을 펼 공무원은 없을 터이다. 당정협의까지 끝난 정책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게 공무원이다. 반대 입장의 표명은 반개혁세력으로 몰리는 풍토여서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고 어렵게 입을 떼어 문제점을 지적하면 당정협의과정에서 묵살되기 일쑤였다고 복지부 공무원은 실토하고 있다.
복지부 공무원들은 당시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던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다 빠져나가고 애꿎은 복지부만 책임져야 하느냐고 항변한다.
이 때문에 실무자 문책론은 정책 실패에 대한 희생양 만들기라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김대중 대통령은 3월 여당 최고위원과의 간담회에서 의약분업은 내 책임이 크다고 했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복지부장관한테) 속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말은 의약분업 실패 책임이 보고를 잘못한 아랫사람에게 있다는 뜻인데 이번 감사원 감사도 이를 합리화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속았다고 하는 것도 적절한 말은 아니라고 본다. 어쨌든 의약분업 실패의 책임을 철저히 가리고 의료체제의 안정을 위해서는 국정조사라도 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