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고-한양대를 거친 박찬호(28LA다저스)와 광주일고-성균관대의 김병현(22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은 학연과 지연에서 어느 하나도 걸리는 게 없지만 진작부터 끈끈한 인연을 맺어 왔다.
김병현이 고교 2년때 제1회 박찬호 장학생으로 선발됐고 98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 때는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소속팀이 같은 내셔널리그 서부조에 속해 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미국프로야구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풀타임 메이저리거로서 선의의 라이벌 의식을 가질 만도 하다.
실제로 6일 양팀의 맞대결 때 김병현은 무척 속이 상했다. 8회 세이브를 챙기러 나갔다가 무사만루의 위기를 자초한 뒤 강판 당했던 그는 이어 나온 구원투수가 역전타를 맞는 바람에 더그아웃에 앉아서 패전투수가 됐다. 김병현은 그 순간 박찬호가 벌떡 일어나 환호하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보름 후인 21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 이번엔 김병현이 박찬호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시즌 9승과 5연승에 도전했던 박찬호는 이날도 7회까지 탈삼진 7개를 곁들이며 3안타 3볼넷만 내주는 호투를 했다. 그러나 2-0으로 앞선 4회초 무사 1, 2루의 위기에서 델루치에게 번트를 대주지 않으려 했던 게 화근이었다. 번트에 실패한 델루치는 빨랫줄 같은 직선타구를 가운데로 날렸고 이 타구를 중견수 굿윈이 슬라이딩 캐치하려다 뒤로 빠뜨리는 바람에 졸지에 동점이 되며 무사 3루가 됐다. 이어 1사 3루에서 묄러의 스퀴즈 번트로 역전.
그러나 다저스는 7회말 1사후 역적 굿윈 대신 나간 그리솜이 동점홈런을 날려 박찬호의 패전 멍에를 벗겼고 2사 1루의 역전찬스를 잡았다.
다음 타자는 찬호 도우미인 4번타자 셰필드로 한방이면 마운드를 물린 박찬호가 승리투수가 될 수도 있는 상황. 이때 김병현이 등판했다. 단 한번도 맞대결을 벌이지 않았던 둘이 처음으로 같은 경기에 나란히 등판한 순간이었다.
거포 킬러로 통하는 김병현은 전혀 주눅들지 않고 시속 150에 육박하는 잠수함 강속구를 뿌려댔고 셰필드는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삼진 아웃. 결국 박찬호는 승리투수의 꿈을 접어야 했고 김병현도 8회까지 1안타 무실점으로 처리, 최근 6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을 한 뒤 승패 없이 마운드를 내려왔다.
승부는 다저스가 9회말 애리조나의 바뀐 투수 사벨로부터 1사 만루의 찬스 때 캐로스가 몸에 공을 맞아 끝내기 밀어내기 승리를 거뒀다. 박찬호는 26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할 예정.
한편 김선우(24보스턴 레드삭스)도 이날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와의 원정경기에 등판해 1이닝 동안 삼진 1개를 뺏으며 퍼펙트로 막는 호투를 했다. 보스턴이 8-2로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