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오피니언]여성 과학자 고용 늘려라

Posted July. 05, 2001 09:37,   

ENGLISH

6월 미국의 명문 사립대인 프린스턴대에서는 새 총장으로 셜리 틸먼 박사가 취임했다. 놀라운 것은 전통적으로 남자들의 대학이었던 프린스턴대의 새 총장이 생물학을 전공하는 여성 과학자라는 사실이다. 틸먼 박사는 프린스턴대 최초의 여성 총장이라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아마 그 확률은 제로(0)에 가까울 것이다. 지금도 여자대학교를 제외한 종합대학의 총장 중에서 여성은 거의 없으며, 특히 과학자는 찾기 어렵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은 여성 과학자가 우리나라 일반 종합대에서 총장이 되는 것을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만한 경력을 쌓은 여성 과학기술인의 수가 워낙 적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공립대학의 이공()계열 교수 중 여성은 이학계열이 6.2%, 공학계열이 0.7%에 불과하여, 자연계열을 전공하는 대학생의 25% 이상이 여학생인 점을 감안할 때 매우 소수인 형편이다.

이 같은 불균형의 원인이 과연 자연과학이나 공학에 소질 있는 한국 여성의 수가 적기 때문일까. 하기는 물리학 같은 자연과학은 학문 자체가 너무 남성적이라는 논란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외국의 예를 보거나 우리의 실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 과학기술 전문가의 성비 불균형은 그런 설명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는 과학기술분야에 취업하고 있는 연구원의 3분의 1 이상이 여성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10분의 1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과학기술인의 비율이 전문성이나 경력이 많아질수록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즉 학위 취득자 중 여성의 비율은 학사에 비해 석박사 때 많이 줄고, 졸업 후 전문 연구기관에 취업한 여성의 비율은 졸업생 비율보다도 적게 나타난다. 이런 통계는 여성 과학기술인의 취업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현실이 유능한 과학기술인 후진 양성에도 큰 지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 경험하였듯이 경제구조가 첨단산업 위주로 변하고 일반 국민의 생활이 안정되면, 과학기술 전문인력의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젊은 사람들의 직업 선호도는 이공계보다 손쉬운 서비스 분야로 몰리게 되어 과학기술인력의 수급에 차질이 생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대학입시에서 자연계열을 선택하는 응시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2001학년도 수능시험에서는 30%에 미달하였듯이 벌써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선진 외국에서는 이민정책 등을 통하여 이러한 전문인력의 부족 현상을 해결하였지만, 우리의 경우는 사회문화적 여건이 달라 잠재인구가 많은 여성 과학기술인력 확충만이 유일한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많은 재능 있는 여학생들이 사표()로 삼을 수 있는 선배 여성 과학기술자를 알지 못하고 장래 직업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과학기술자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 과학기술의 중심으로 부상되고 있는 정보기술, 생명공학, 초미세과학 등은 여성의 섬세함과 유연성이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분야여서, 여성과학기술인의 참여 확대가 매우 필요하다. 그러기에 독일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여성 과학기술인력의 비율을 높이기 위한 여러 시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제 과학기술 입국()을 통한 우리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나, 대졸 학력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행히 7월 1일부터 시작된 제6회 여성주간을 맞아, 과학기술부는 국공립 연구기관과 대학,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신규 인력 채용 시 여성과학기술인력 채용목표제(쿼터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물론 능력 없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채용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능력 있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채용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불공정의 두꺼운 벽을 깨기 위해서는 채용목표제라는 충격요법이라도 한 번 써볼 만할 것이다.

오세정(서울대 교수물리학, 본사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