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두라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사진)은 부패 혐의와 관련해 야권이 추진중인 탄핵 움직임을 막기 위해 20일 비상 사태를 선포하려던 방침을 철회했다.
아굼 구멜라르 정치 사회 안보 조정장관은 이날 와히드 대통령과 면담한 뒤 이 같이 밝히고 사흘 안으로 탄핵추진 세력과의 협상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만일 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탄핵안 처리를 위한 국민협의회(MPR)가 소집되기 하루 전날인 31일 비상사태가 선포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와히드 대통령이 비상사태 선포를 일단 철회한 것은 탄핵추진 세력과의 타협에 일부 성과가 있는 데다 군과 경찰 수뇌부가 비상사태 선포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 선포를 하더라도 실효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 검찰은 탄핵을 추진하는 야권 핵심 인사를 상대로 대대적인 부패 혐의 수사를 벌이고 있는데 이는 탄핵 추진을 막으려는 압박작전으로 풀이된다.
제1야당인 민주투쟁당 대표 아리핀 파니고로가 수뢰 혐의로 입건됐으며 제2야당 골카르당 총재 악바르 탄중도 곧 정치자금 유용 혐의로 소환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이 같은 공세에 밀려 민주투쟁당 지도부 내에서는 와히드 대통령이 제시한 권력 분점안을 받아들이고 탄핵추진을 중지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골카르당과 제3야당인 통일개발당 일부에서도 타협 의견이 강하게 대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탄핵 강행론이 우세하다.
와히드 대통령은 최근 민주투쟁당 총재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에게 군통수권 등 대부분의 권력을 넘기고 명목상 국가수반직만 유지하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메가와티 부통령은 이제는 탄핵 절차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타협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대부분의 MPR 대의원(총 695명)은 20일 자카르타 도심 호텔에 집결해 비상사태 선포시 곧바로 회의를 열고 탄핵 논의에 들어갈 태세를 갖춰놓고 있다. 대통령의 경찰청장 체포 명령을 거부한 경찰은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해도 이에 따르지 않을 것이며 MPR 대의원들이 총회를 열 수 있도록 보호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와히드 대통령의 비상 사태 선포 철회 배경에는 이 같은 군경조직의 항명 등 심각한 통치력 누수 사태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MPR 의사당 주변에는 탄핵 추진에 반대하는 와히드 대통령 지지자들의 폭탄 테러 등에 대비해 군경이 삼엄한 검문검색을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