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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남부교류 조바심 내지 말자

Posted August. 18, 200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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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에는 남북 화해시대의 남-남갈등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북한의 변화 여부 논쟁, 대북 퍼주기식 지원 논란, 국가보안법 개폐 논쟁 등 남-남갈등은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 온 대립과 갈등의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남북관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갈등일 수 있다.

현재 겪고 있는 많은 갈등 중 상당 부분은 겪지 않아도 될 것들이다. 이데올로기적 입장에 따른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신경 쓰면 아예 일어나지 않을 갈등도 있다. 절차상의 문제에서 불거지는 갈등은 정책결정과 집행과정에서 파생된 것으로 정책당국의 책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평양에서 열린 남북민족통일대축전과 관련한 갈등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앞에서 열린다는 상징성 때문에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에 말려들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이 행사장소를 변경하지 않으면 참석을 불허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바 있다. 그러나 당국간 대화가 끊긴 상태에서 민간교류마저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한 부담과 참가불허 조치가 향후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등으로 8월14일 오후 늦게 전격적으로 방북을 허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 단체의 참가자들이 기념탑 부근 행사에는 참가하지 않는다는 당초 약속을 어기고 행사참석을 강행해 논란이 빚어졌다. 북한에서 평양은 그 자체가 이른바 혁명의 도시이다. 곳곳에 혁명과 관련된 기념물과 개인숭배물이 있다. 따라서 이런 장소를 피해서 행사를 갖기도 쉽지는 않다.

남북간에는 아직 체제경쟁과 적대관계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 내의 행사장소와 성격에 따라 행사참석 자체가 북한의 주장을 수용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일부 참석자는 단체대표가 쓴 각서의 내용을 모른 채 정부가 기념탑 부근 행사에 참관하러 갈 수 있다는 쪽으로 방북을 승인했다고 생각하고, 수만명의 평양시민이 뙤약볕 아래에서 기다리는데 통일을 하자고 온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을 고생시킬 수 있느냐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행사참석을 강행했다고 한다. 일부는 각서를 썼으며 추진본부측이 평양에 와서 개막식 참석불가 입장을 정한 것을 알면서 참가를 강행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혼란이 생긴 것은 대표단이 200여개 단체로 구성돼 추진본부측의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단 구성단체가 많고 통일운동을 주도하던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다는 점에서 혼란은 예견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표단 구성단체들이 사전에 모여 방북 일정에 대해 충분히 협의하지 못한 것과 이를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정부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우리는 남북교류가 많아져야 상호이해의 폭이 넓어진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막상 남북교류가 이뤄지는 과정에서는 이념과 제도의 차이 등에서 오는 오해와 혼란이 일어난다.

때로는 실정법을 초월하여 평양에 들어가 통일운동을 펼치다 옥고를 치른 사람들도 있다. 황석영씨와 임수경씨도 그들 중 일원이다. 특히 임씨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고 입북해 북한에서 임수경쇼크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남쪽의 생기발랄한 여대생이 북쪽에서 자유분방한 행동을 보임으로써 남쪽사회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북쪽에 알렸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사람이 북한사회의 대남인식을 바꾸는 역할을 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감옥까지 갔다온 임수경, 황석영이 북한을 다시 방문했다는 사실에 대해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궁금하다. 아마도 북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남북간 체제경쟁 시대에는 늘 북한의 대남적화 야욕을 경계했다. 남쪽 체제가 열세였던 시기인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남북대화와 교류 자체를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경계하기도 했다. 이제는 남쪽의 체제역량이 북쪽보다 훨씬 우세하다. 지금은 일련의 남북교류가 역통일전선전술로서 기능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참을성 있게 남북교류를 지켜보는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 유 환(동국대 교수,북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