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전면전에 나설 기세이던 미국이 군사행동 개시에 앞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 전면적인 응징에 나설 것이다는 등 공격적인 발언을 계속하던 미 행정부 고위관계자들이 잇따라 방어적이고 장기적인 대응을 중시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데서 감지된다. 이 때문에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당분간 미국이 군사행동을 감행하지 않을 것 같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전쟁미 행정부 내 대표적 매파인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25일 미국은 테러응징을 위해 대대적인 침공작전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은 성격상 대규모 침공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와 같은 D데이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테러 참사 직후인 12일 해외 주둔 미군들에게 여러분은 수일 내에 미국의 영웅이 될 것이라며 전쟁이 임박했음을 시사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발언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이날 의회 지도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미 군사력의 배치 상황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걸프전과 같은 기존 재래식 전쟁과는 판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탈레반 정권의 전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아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의 말이나 오사마 빈 라덴을 내놓을 경우 탈레반 정권이 서구사회의 원조를 받을 수도 있다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발언도 강경 일변도였던 미국의 태도에 변화가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군사작전보다는 탈레반 고립작전15, 16일 캠프 데이비드(대통령 별장)에서 열렸던 국가안보팀 전략회의에서는 이번 테러와의 전쟁을 군사작전에만 의지하기보다 외교, 경제, 정보 등 다각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따라서 미국의 전쟁은 이미 포성 없이 시작된 셈이다. 미국은 테러조직의 자금줄을 끊기 위해 이미 테러단체 및 개인의 자산 동결조치를 내린 데 이어 외교적으로도 아프가니스탄을 고립시키는 전략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던 3개국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탈레반과의 단교를 선언했고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내 자국 외교관을 모두 불러들이는가 하면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전략이 군사작전에 앞서 일단 정치적, 경제적으로 탈레반을 사면초가에 몰아넣어 자진 투항을 유도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최근 부시 대통령이 의회 연설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기를 피워 구멍에 있는 적들을 끌어내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도망치는 적을 잡아내겠다(smoke out)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
이런 가운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인근에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것은 군사력 과시를 통해 미국의 정치 외교적 입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에 침투한 특수부대가 위기에 처할 경우 즉각 구출을 위한 군사행동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