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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젠 문명 공존을 말하자

Posted October. 17, 200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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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공습을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선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날로 확산되는 반미감정이 또 다른 테러나 예기치 않은 사태를 불러와 일을 그르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질 때 세계는 경악했다. 그후 한달 동안 지구촌은 숨을 죽였다. 이윽고 미국의 보복공격이 시작되자 세계인들은 안도감보다는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반테러전에 감히 반대하고 나선 국가는 없었지만 첨단무기가 뿜어대는 화력이 이슬람의 자존심을 짓밟아 성전()의 도화선이 될지 모른다는 낭패감 때문일 것이다. 최초의 문명간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걸프전만 하더라도 구도가 이렇게 복잡하지는 않았다. 걸프전을 통해 미국은 페르시아만과 쿠웨이트의 막대한 석유자원을 안전하게 확보했고, 이라크의 후세인은 이슬람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적어도 서로 다른 전리품을 챙긴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얻을 것은 별로 없다. 미국의 요구는 시체건 생체건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 인도와 그가 이끄는 테러집단의 제거이다. 욕심을 낸다면 이번 기회에 국제사회에서 테러의 싹을 도려내겠다는 것이다. 이슬람권에서 변방의 지도자에 지나지 않는 탈레반의 모하마드 오마르는 나라가 쑥대밭이 돼도 반미 전쟁을 감행한 원리주의자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이런 세계관은 이미 소련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때 형성됐다. 세계의 두 초강대국 중 하나를 물리치고 이제 다른 초강대국과 한판 붙을 기세를 가다듬어 왔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패권국가인 미국이 이슬람을 모멸해 왔다는 흔들리지 않는 적대감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을 의식한 탓인지 미국은 미사일과 식량을 동시에 투하하는 복합적인 전략을 구사하며 전쟁 목적을 반테러전으로 좁혀 국제적 응징동맹이 흩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탈레반과 빈 라덴은 패권국가에 대한 이슬람 문명의 정의로운 도전으로 확대시켜 범이슬람적 연대는 물론 제3세계의 호응을 노린다. 테러에 대한 인도주의적 분노가 가시지 않은 지금은 반테러전 명분이 힘을 얻고 있지만, 전쟁이 장기화되고 세계화의 어두운 양상들과 테러를 연관시키려는 분위기가 확산되면 전쟁을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선이 슬쩍 이슬람 쪽으로 기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새뮤얼 헌팅턴 자신이 우려했던 바대로 반테러전은 문명 충돌의 양상을 띨 가능성이 많은데, 실제로 이슬람권 내부에는 문명 충돌로의 비화를 재촉하는 요인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가장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국가경계를 넘는 인종적 유대인데,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가 시장과 자원 확보, 때로는 자국의 이익에 맞춰 이슬람 국가를 분절시키는 과정에서 본능적 유대의 끈은 오히려 강화됐다. 인종적 유대는 인종간 전쟁을 낳기도 해서 이슬람 국가들은 이웃과 공존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미국의 공습으로 탈레반이 붕괴하는 것은 시간문제이지만, 수니파 이슬람의 항전의식이 확산되고 과격파 원리주의자들의 무력시위가 잇따르면 이슬람권의 안정은 크게 위협받을 것이 분명하다. 친미 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다수의 아랍계 이슬람 국가들도 서구 대 비서구의 대립구도에 동요될지 모른다.

미국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이슬람의 이런 분위기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반세계화 정서와 결합할 가능성이다. 마침 영국 독일 이탈리아를 위시한 유럽 국가에서 반전 시위가 일어나고 반세계화 연대가 가세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정권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독선적 태도를 상당히 누그러뜨렸다고는 하지만, 반테러전이 세계화를 가로막는 방해물을 제거하고 미국 자본에 항구적 자유를 선사하려는 전쟁으로 비쳐질 위험도 있다. 보복공격에 대한 세계인의 공감대 속에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범인류적 경계심도 동시에 배어있었던 것이다.

이래저래 미국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복잡한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그럼에도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세계 열강이 이슬람권에 만들어 놓은 피묻은 경계선의 세계적 확산을 막는 것이다. 그것은 이슬람 지역에서 또 다른 유혈전쟁을 유발하거나, 반미 테러의 일상화를 초래할 것이다. 반테러전쟁을 계기로 문명 공존의 가능성이 급기야 실험대에 오른 듯한 인상이다.

송호근(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