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허무할 수가 있을까.
1일(이하 한국시간)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월드시리즈 4차전. 동양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무대에 선 토종 핵잠수함 김병현(22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기세는 9회 2사까지만 해도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선발 커트 실링의 호투로 3-1의 리드를 안고 8회 마운드에 오른 김병현은 양팀 통틀어 가장 어린 선수의 데뷔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거침이 없었다. 3회말 선제 1점홈런의 주인공 셰인 스펜서를 시작으로 스콧 브로셔스, 알폰소 소리아노로 이어지는 양키스의 오른손 하위타선은 김병현의 춤추는 변화구와 밑에서 위로 솟구치는 불같은 강속구에 연방 헛방망이질을 해댔다. 세 타자 연속 삼진.
9회에도 김병현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앞의 세 타자가 어이없이 무너지는 것을 본 양키스의 오른손 톱타자 데릭 지터는 초구부터 기습번트를 시도했지만 3루땅볼로 아웃. 폴 오닐의 타구는 좌익수앞 안타가 되긴 했지만 빗맞은 안타였고 버니 윌리엄스는 3구 삼진을 당하는 수모를 안았다.
그러나 호사다마였을까. 마지막 한 타자만 잡으면 되는 2사 1루에서 김병현이 던진 첫 공은 바깥쪽으로 약간 빠지긴 했지만 밋밋한 직구였고 양키스의 4번타자 티노 마르티네스는 이를 놓치지 않고 풀스윙으로 끌어당겨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극적인 동점 2점홈런을 만들어냈다. 마침 9회 들어 양키스타디움에 홈플레이트에서 펜스쪽으로 강풍이 분 것도 김병현의 불행.
김병현은 계속해서 호르헤 포사다에게 볼넷, 데이비드 저스티스가 2루수 실책으로 나가 2사 1, 2루의 위기를 맞았지만 스펜서를 다시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워 경기는 연장전으로 들어갔다. 양키스는 10회초부터 현역 최고의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를 내 내야땅볼 3개로 간단하게 이닝을 끝냈고 다시 공은 김병현에게 돌아왔다.
마음을 고쳐 잡긴 했지만 9회까지 2이닝동안 10타자를 상대했고 45개의 공을 던진 게 힘에 부친 듯 김병현의 공은 8회만큼 위력적이진 않았다. 브로셔스와 소리아노의 타구는 뜬공으로 아웃되긴 했지만 외야로 날아갔고 결국 지터가 파울볼을 4개나 걷어내며 풀카운트에서 친 공은 오른쪽 담장을 살짝 넘기는 연장 10회말 끝내기 홈런으로 연결됐다.
이로써 양키스는 2패후 2승을 거둬 7전4선승제의 월드시리즈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김병현은 올 포스트시즌에서 5경기에 나가 9이닝동안 4안타 3실점, 평균자책이 3.00이 됐다.
애리조나가 4선발 미구엘 바티스타, 양키스가 1차전 선발 마이크 무시나를 내는 5차전은 2일 오전 10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