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과 헤리티지재단이 발표한 경제적 자유지수에서 한국이 1994년 이래 최악을 기록했다는 보도는 그동안의 정부 정책 집행 과정을 감안할 때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작년보다 등급이 9단계나 더 떨어져 해가 갈수록 경제적 자유도가 나빠지고 있다는 평가는 이미 예고된 일이나 다름없다.
1997년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가게 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부실기업에 대한 정부 주도의 관치 대출과 이로 인한 금융기관의 부실화 때문이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국민의 정부가 취임 이후 경제 정책의 우선 순위를 금융자율과 각종 규제완화에 두겠다고 한 것도 바로 환란의 뼈저린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만 4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관치 금융이 사라졌고 각종 규제가 획기적으로 완화됐다고 입버릇처럼 자랑했지만 이번 조사 발표는 그것이 얼마나 허구였는지를 객관적으로 입증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언론과 연구기관이 조사 이후 가장 최악의 점수를 주고 있다면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그렇게 고통을 당하고도 원인 제거를 하지 못했다면, 아니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면 정부의 기능과 능력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정부는 5월 기업규제를 완화한다며 민간대표들과 함께 규제완화 태스크포스팀까지 만드는 쇼를 벌였지만 여기서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정부 내 부처간에 신경전만 펼치다가 재벌 개혁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여당의 주장에 작업은 무산됐다. 그리고 지금 한다는 소리가 3년 뒤에 검토하겠다는 것이니 도대체 이 정권은 규제 완화에 뜻이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다.
이번 조사에서 특히 유념해서 보아야 할 부분은 좋지 않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이 정부 개입과 재정 부담 등 정부 관련 부문 때문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경제적 자유도를 악화시킨 주역이 정부라는 얘기다. 개발경제 시대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경제가 글로벌화한 시기에 정부 개입이 남아 있고 그 때문에 경제 자유도가 낮아졌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당국이 맹성해야 할 부분이다.
이제 대통령의 임기가 불과 1년 남짓으로 좁혀졌다. 최악으로 평가될 정도의 경제 자유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키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나머지 임기를 경제살리기에 치중하겠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다짐은 경제 주체들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관 주도의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에서 실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