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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즈넉한 경복궁을 보고싶다

Posted November. 22, 200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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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담길 은행나무들의 낙엽이 벌써 많이 떨어져 내렸다. 이제 고엽의 계절도 겨울에 자리를 내어 줄 차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예년에는 은행잎들의 황금빛 찬란함에 탄성을 올리곤 했는데 올해 낙엽은 이상하게 빛깔도 좋지 않고 퇴색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는 나 혼자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서울에서 가장 공기오염도가 높은 곳이 광화문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 원인은 가장 많은 노선의 버스들이 집결하는 곳 중의 하나가 광화문이기 때문이다. 인구가 1000만명을 넘은 대도시 서울의 중심지이므로 이 정도는 현실로 모두 감수하는 것 같다. 경복궁은 이런 광화문 네거리에서 지척에 있다. 조선 왕조가 정궁 터를 여기에 잡은 것은 좌청룡 낙산과 우백호 인왕산, 북한산과 한강이 있는 명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명당 터 경복궁과 그 주변이 이젠 공해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작년 초부터인가 경복궁 안과 밖에 관광객들을 싣고 온 대형 관광버스와 승합차들이 즐비하다. 특히 주말이면 담 밖의 한 차선은 아예 주차전용으로 변해 고궁 담을 덮어 버리고, 또 이 차들은 엔진을 켜놓은 채 서 있어 공기 오염을 가중시키고 있다. 경복궁 담길의 은행나무들이 저렇게까지 된 데는 이 같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찌 은행나무뿐이겠는가. 지역 주민들이 고역을 치르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렇게 된 것은 청와대 앞의 개방과 경복궁 내의 민속박물관의 대성공 때문이다. 환영하고 축하해야 할 일임에 분명하지만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나라 관광지의 성공이 불러오는 자연 환경의 훼손처럼, 경복궁과 그 주변도 공해에 찌들고 주말이면 소란과 법석의 장소로 변해 버린 것이다. 경복궁 길을 대중을 위한 거리, 풍물의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까지 나오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지난해 가을에는 한 도시계획전문가에 의해 이 길이 거의 인사동처럼 번잡한 거리가 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600년 역사의 고도 서울에는 동대문 남대문 같은 부산스러운 장터도 있고, 활기찬 패션거리와 나이트 라이프의 명동, 골동 애호가들의 인사동, 현대적인 화랑가, 대중을 위한 극장가, 또 평화로운 일상의 주택가와 아파트단지들, 역사를 느끼며 사색을 즐기는 고궁과 그 담길도 있고, 지성적인 분위기의 차분한 대학가도 있는 것이 너무나 정상이고 인간적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오늘의 서울은 왜 이토록 모두 뒤죽박죽이고 품위 없는 도시로 전락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경복궁의 주차 대란을 다소나마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민속박물관이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민속박물관은 국립박물관에서 독립한 지 채 10년이 못 되는 과정에서 전국 최대의 관람객을 자랑하는 박물관으로 급성장했다. 현재의 규모와 인력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지 벌써 오래다. 이러한 박물관 자체의 필요성과 경복궁의 복원사업이 맞물려 민속박물관의 이전 사업에 박차가 가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 있다. 주말 여가 시대에 접어들어 앞으로 가족이나 단체 단위의 문화관광이 더욱 활발해 질 것이고, 경복궁과 그 안의 국립중앙박물관만 하더라도 현재의 주차공간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게다가 궁궐 마당에 대형버스가 대거 주차하는 것은 고궁의 미관과 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해결책의 하나로 경복궁과 박물관 자체가 단체관람 예약제를 도입해 한 주 내에 관람객을 조절 분산하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또 서울시와 종로구는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중앙청사 사이의 지하주차장을 대형버스 주차가능 공간으로 개조하고 경복궁 안(지하철역 출구 쪽)으로 지하통로를 만들어 관람객 편의를 최대화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물론 돈이야 들겠지만 현대 건축기술로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동차들이 경복궁 안팎을 점령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되지 않을까. 우리 서울에 조용한 곳을 한두 군데라도 남겨 두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경복궁과 그 주변이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역사의 품위를 되찾게 되고, 고궁 담길의 은행나무들은 건강을 회복해 다시 그 찬란했던 금빛 낙엽의 가을 잔치를 벌일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김홍남(이화여대 교수,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