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112조5800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심의하면서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해 정부의 불요불급한 씀씀이를 찾아내 줄이려고 하기는커녕 여야로 갈려 자기 당 지역구 민원사업 챙기기에 급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여야는 특히 예산의 삭감 및 증액 기준을 공공의 이익보다는 당리당략에 맞춰 상대 당에 유리하면 깎고 자기 당에 유리하면 늘리는 식으로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어 예산안 통과시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기획예산처에 제출한 부처별 조정내역이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소속 의원들로부터 취합한 지역구 민원사업 64건에 필요한 예산 7683억원을 증액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나라당 예결특위가 6일 작성한 이 문건에는 정부 부처별로 증액 또는 삭감 대상 예산 항목과 요구 금액, 요구 사유, 요구한 의원 이름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예를 들어 건설교통부는 경부고속철 오송역사(100억원, 윤경식 의원) 대구공항 민간급유시설(30억원, 박세환 의원) 삼락IC양산 석산 도로(200억원, 정의화 의원), 철도청은 대구선 이설(92억원, 박종근 의원) 삼랑진진주 전철화(70억원, 김용갑 윤한도 의원) 동해남부선 울산경주포항 구간(50억원, 김만제 의원) 식이다.
한나라당은 대신 정부 예산안에서 공공근로사업 등 대민 접촉 사업은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여당 선심 사업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예외 없이 대폭 삭감을 요구해 해당 사업 관계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반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는 민주당 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사업 예산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
외국인 전용단지 부지 매입 사업은 전체 예산 548억의 94%를 광주 평동이나 전남 대불 등에 집중했고, 전북 군산의 자유무역지역 개발사업은 인접한 익산 수출자유지역의 공단 분양률이나 가동률이 저조한데도 내년 예산을 올해의 327억원보다 75% 늘어난 574억원으로 잡은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 또 고속도로 신설 사업 중에도 고창장성, 무안광주, 목포광양 등 호남이나 평택음성, 양평가남 등 수도권 구간이 대거 포함된 반면 영남 지역은 거의 없어 지역 편중 시비를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