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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아르헨 사태 강 건너 불 아니다

Posted December. 22, 200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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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에 시달리던 아르헨티나 국민의 분노가 폭발해 대통령과 전 내각을 권좌에서 몰아냈다. 사실 아르헨티나 국민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몇 년을 버텨왔으나 직업도 없고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을 살 돈이 없는 빈곤층이 전체 국민의 40%를 넘어섰으니 어떻게 더 참겠는가.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의 상점에서 아르헨티나 국민이 약탈한 것은 값비싼 내구재가 아니라 당장 먹고사는 데 필요한 생필품이었다.

20세기 중반까지 손꼽히던 경제대국이던 아르헨티나가 오늘날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한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로는 설명할 수 없는 원죄() 같은 이유가 있어 아르헨티나가 경제난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누적된 과거 정부의 잘못과 이로 인해 아르헨티나 사회에 가득 찬 불신, 이기주의가 바로 그것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노조세력의 지지를 바탕 삼아 집권한 후안 페론은 집권 내내 노조의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를 수용하는 등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으로 일관해 후대에 고통을 물려준 대표적 지도자로 꼽힌다.

이번에 물러난 페르난도 델라루아 대통령은 구제금융을 받으려면 재정적자 제로를 달성하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따라 공무원 월급과 정부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은행예금 인출을 제한하는 등 초강수를 뒀다. 1320억달러의 부채를 짊어진 국가를 구하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설명했으나 정부의 긴축정책에 따라 고통을 감내하려는 국민은 거의 없었다. 국민은 정부가 IMF의 말을 듣느라 대다수 국민의 목을 죈다며 강력하게 반발했고 노조는 총파업을 단행했다. 여기에 경제장관이 악성 단기외채를 장기 저리 공채로 바꾸는 과정에서 거액의 커미션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집권층의 비리까지 불거졌다.

아르헨티나 사태가 경제적으로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고봐야 하겠지만 강 건너 불이라며 고개를 돌릴 일은 아니다. 국민을 분노케 하는 각종 권력형 비리의혹이 잇따라 불거져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아르헨티나 사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국가가 흔들린다는 것이 아르헨티나 사태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정부는 아울러 2만5000여명이나 되는 교민의 안전을 위한 대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