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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뒤 탐욕

Posted January. 26, 200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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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는 뉴욕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뒷골목이었다. 이 곳이 어떻게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게 이 책의 목적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이 없는 350년 미국 주식 시장의 역사를 보여 주는 통사이다.

월스트리트는 금과 은, 조가비나 염주알 같은 것이 화폐로 쓰이던 시절, 네덜란드인들이 인디언과 영국인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던 담장(wall)에서 출발했다. 이곳에 자본이 모여들어 거래가 활발해지자 증권 브로커들은 자신들의 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월스트리트 무화과 나무 아래 모여 게임의 룰(버튼우드 협정)을 정한다. 이후 운하와 철도의 건설, 전쟁을 거치면서 엄청난 자본이 거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가 처음부터 선진적인 자본시장은 아니었다. 사실, 20세기 초만 해도 미국은 문제가 많은 나라였다. 외채를 떼 먹기 일쑤였고 기업의 분식 회계와 부실 경영이 얼마나 뿌리 깊었던지 영국 투자자들은 아예 미국 기업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주식시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주가 조작과 사기, 협잡이 당연시됐고, 3달러를 들여 설립한 회사의 주식을 팔아 150만달러를 챙기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월스트리트 역사에 남는 희대의 작전 사례가 두 개 있다.

첫번째가 이리(Erie)철도 인수 전쟁이다. 두 번째는 대통령까지 사기에 끌어들인 금투기 사건이었다. 당시 사건의 주인공은 제이 굴드였다.

월스트리트가 이런 난장판을 딛고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을 사랑한 탁월한 인물과 스스로 잘못된 것을 고치려는 자정 능력 덕분이었다. J.P. 모건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경제 위기로 줄어든 금을 보충하기 위해 미국 국채를 유럽에 처음으로 내다 판 것이 모건이었고, 미국 대통령이 어떻게 하면 되죠?라는 정책 자문을 처음으로 던졌던 월스트리트 인물도 그였다. 중앙은행마저 없었던 때 모건이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월스트리트는 때때로 닥치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책을 읽어보면 월스트리트 역시 기업회계의 투명성과 투자자 보호가 이뤄지기까지 사기와 협잡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전으로 얼룩졌던 지난해 우리 주식시장에 비춰보면 역설적으로 월스트리트도 그랬다는데하는 위안도 생긴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는 것일까? 이번에 엔론사태를 계기로 월스트리트는 다시 위기에 빠졌다. USA투데이와 월스트리트저널의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월스트리트가 1980년대 규제완화와 자유화, 시장화의 이름 아래 다시 탐욕이 아름다운 시대가 됐다고 분석한다. 1990년대 인터넷 거품은 탐욕의 극치였으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엔론사태는 탐욕의 시대에 곪고 있던 병이 그 시대가 끝날 즈음 나타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엔론이 지난 4년간 과다 계상한 수익만도 5억9100만달러에 이르는 데다, 아서 앤더슨을 포함한 빅 5 회계기관이 대부분 분식회계에 연루돼 있는 것으로 밝혀져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월스트리트에 공인회계사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80년대이다. 기업회계사들은 경영자 편이어서 이들이 만든 장부는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공인회계사를 탄생시켰는데, 120년이 지나도 엔론과 같이 어처구니 없는 일을 막지 못했다. 유난히 투명성을 강조하던 월스트리트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저자는 현재 월스트리트의 치부가 드러나고 있는 것은 1980년대 이후 진행된 금융자본의 전지구화 현상과도 관련이 크다고 지적한다. 월스트리트가 심판이 없는 탐욕의 게임을 최근 20년 동안 진행해 왔기 때문에 심판없는 게임은 결국 판이 깨진다는 논리에 따라 전 지구적 금융감독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월스트리트가 이번사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주목된다. 원제 The Great Game(1999년).

강남규 옮김

이종우(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

월스트리트 제국

존 스틸 고든 지음

참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