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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천재 절망 그리고 노벨상

Posted February. 03, 2002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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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사람보다 더 차갑고, 더 거칠고, 주저하는 일이 더 적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겁내지 않는다. 존경과 체통을 따지는 미덕, 곧 떼거리의 미덕이랄 수 있는 모든 것을 결여하고 있다. 그는 앞장설 수 없으면 혼자 간다. 자신에게 말할 때가 아니면 가면을 쓴다. 그의 내면에는 칭찬할 수도 비난할 수도 없는 고독이 자리잡고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권력에의 의지에서 말한 위대한 사람(초인)은 20세기의 위대한 수학자인 존 포브스 내쉬(74)와 딱 맞아떨어진다. 만약 니체가 내쉬에 관한 이 책을 읽었다면 초인을 흔쾌히 아름다운 정신(A Beautiful Mind)으로 바꿔 적었을 것이다.

20대에 수 많은 업적을 이룬 수학의 천재, 30대에 찾아온 지독한 정신분열증, 그후 30년간의 자기 분열과 좌절, 그리고 기적적인 회복과 노벨경제학상 수상. 천당과 지옥을 수 차례나 오갔던 한 인간의 휴먼 드라마는 1998년 뉴욕타임스 기자가 쓴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이 책이 전하는 뭉클한 감동은 능히 할리우드를 움직이고도 남음이 있다. 22일 국내 개봉을 앞둔 화제의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러셀 크로 등 일급 배우들이 빼어난 연기력을 통해서 내쉬의 인간승리를 그리고 있다.

실제 삶은 때로는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법. 내쉬가 정신분열증을 극복하는 부분만을 떼어내서 상상력으로 덧칠한 영화에 비해서 이 평전의 감동은 몇 곱절 풍부하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아름다운 정신이란 제목으로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됐지만 3000여명의 눈 밝은 독자가 이 책을 찾았을 뿐이다.

사실 내쉬는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수업도 안듣고, 책도 보지 않고서 늘 다수의 믿음에 반대하며 스스로 지적 내기를 건 괴짜 천재였다. 빈 종이컵을 물고 씹어대기 일쑤였던 그는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외톨이로서 논쟁에서 지면 토라지기 일쑤였다. 따돌림은 천재인 그가 치러야할 대가였다.

그러나 영화는 실제 내쉬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특히 그가 광기에 사로잡힌 원인이 구 소련의 암호를 해독하면서 얻은 냉전의 공포로 본 것이 그렇다. 이 책에 따르면, 그는 탁월한 암호 해독가도 아니었으며 정부의 비밀 프로젝트에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도 없다. 유년기부터 당했던 놀림, 아버지의 죽음, 노벨 수학상으로 불리는 필즈 메달을 못받은 열패감, 그리고 한국전쟁에 징병될지 모른다는 불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백발이 되어서야 광명을 본 내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이 사십이 넘어서 새로운 이론을 발표한 수학자는 없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듯 도시락을 싸들고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 도서관에 가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연구할게 많다는 생각에 거금을 주고 그의 전집을 출간하겠다는 대학 출판사의 제안도 이미 거절했다.

아름다운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비상한 두뇌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에 있음을 이 책은 나직하게 증언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힘보다 더 큰 지배력도 더 작은 지배력도 가지 수 없는 존재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말을 새겨둘 만하다. 신현용 외 옮김, 원제 A Beautiful Mind(1998).

뷰티풀 마인드

실비아 네이사 지음



윤정훈 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