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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몇 번 소용돌이 칠건가

Posted March. 28, 200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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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대선정국은 유난히 긴 것 같고 흐름의 기복도 유별나게 심할 것 같다. 소용돌이치는 한국정치를 톡톡히 경험할 모양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제가 새로운 시도였다면 3분의 1지점을 지나면서 경선주자 반 이상이 이런저런 이유로 주저앉고 만 것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특히 선두주자 이인제 후보가 갑자기 페이스를 잃고 만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민주당 국민경선제는 제모습을 잃었다.

음모론을 제기했던 이후보가 중도에 휘청거린 것은 대선정국의 예상돌출변수가 유난히 많고 기복이 심하다는 점을 좀 더 길게 생각하지 않은 까닭이 아닌가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의중을 뜻하는 김심을 겨냥해 음모론을 꺼냈다면 양자를 어정쩡하게 병렬()만 시킬 것이 아니라 김심을 도입부로 현 상황의 명암과 전후좌우를 본격 제기했어야 했다. 나아가 후보들간 현정권과의 차별성을 공통쟁점으로 끌어올린다는 전략 없이 덜컥 음모론본론만 내밀었으니 후보들의 공감도, 관심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전술적 각론에서 실패했다는 생각이다.

현재 부각된 주자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 그리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다. 이 총재는 한나라당의 분란이 터졌을 때 시기를 놓치며 죽을 쑤었고 만신창이()가 됐다. 이 총재가 총재직포기, 집단지도체제수용 등 당내의견을 수렴했다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스스로 껴안은 것이 분명하다. 내분이 가라앉았다 하나 불씨는 살아있다. 여하튼 첫 소용돌이가 끝났다.

이제 관심은 노후보의 정계개편론이다. 이것이 두 번째 소용돌이의 시발점이다. 노 후보가 지금까지 목표로 삼아 온 대통령후보의 기득권까지 포기한다면서 정계개편을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선본선의 승리를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규합대상으로 그는 민주세력, 개혁세력, 통합세력을 꼽았지만 이들간의 차이점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진보성향 인사들일 것이란 예상 속에 이후보측의 좌경화 우려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눈여겨볼 대목이 또 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당조직의 외연을 넓히자는 것인지는 몰라도, 이 경우 DJ정권의 인사정책, 대북정책 및 각종 권력형비리사건으로 인한 부담이 만만치 않다. 아니면 내친김에 새로운 정치세력이 중심이 된 신당까지 갈 것인지. 또 김심과의 관계설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이러한 질문이 나오는 것은 말이 정계개편이지, 노 후보만의 힘으로는 정치판흔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외부세력의 진입과정에서 민주당내 기존조직과 어떤 물리적 반응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 역시 소용돌이의 진원지다.

더욱 결정적인 고비는 6월 지방자치단체 선거다. 김 대통령이 창당한 민주당으로 선거에 나설 경우, 압승한다면 별문제 없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 그 결과에 대한 책임론이 나오게 마련이다. 야당이 현정권의 실정에 총공세를 펼 것이 분명한데다 지금까지 국정에 대한 국민적 평가는 대단히 부정적이지 않은가. 결국 지방선거후의 책임론은 또 다른 소용돌이의 빌미로 등장할 공산이 크다. 그래서인지 지금 정치판엔 이때쯤 등장예상인사들을 가리켜 6월의 사람들이란 말이 돌고 있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결과론일지 모르지만 올 대선정국이 유난히 길고 요동변수가 많다는 점에서 노 후보는 정계개편론을 너무 빨리 빼어든 것 같은 인상이다. 아직 긴 시간이 남은 가운데 정계개편론은 주위를 일찍부터 긴장시켰다. 시간을 갖고 마련할 대응논리와 전략전술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뜻에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선정국 초입에 들어서자 발표된 임동원 대통령특사의 방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북후 후속조치가 초래할지 모를 남북관계 변화는 경우에 따라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고 선거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움직임으로 보아 이번엔 북측이 남측요구에 상당한 수준에서 응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있다. 이럴 경우 대선정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물론 현 집권세력에 유리한 방향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때는 음모론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대전략 차원이다.

대선정국 최대 분수령은 보수와 진보세력간 대결이다. 정파간 연합도 이러한 큰 틀안에서 보수는 보수끼리, 진보는 진보끼리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역대 대선에서 선거일 일주일전 까지도 정파끼리 물밑움직임이 벌어졌듯이 올해도 마지막까지 소용돌이칠 것이다. 긴 호흡이 필요한 선거철이다.

최규철(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