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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전에 골은 없다"

Posted May. 10, 200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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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히딩크 감독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어요.

한국축구대표팀 수문장 김병지(32포항 스틸러스)하면 튀는 골키퍼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꽁지머리에서 노랗게 염색한 머리, 그리고 화려한 유니폼. 그라운드에 나타나면 멀리서도 단번에 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여섯 살짜리 꼬마들도 그를 보고 김병지다 외치며 달려가는 것도 이 같은 튀는 스타일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만으로 그를 판단하면 큰 오산이다. 한국 최고의 골키퍼로 우뚝 선 그의 현재는 그냥 오지 않았다. 근성과 프로정신. 그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경기에서의 튀는 플레이로 거스 히딩크 감독의 노여움을 산 뒤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되는 히딩크 감독은 지난해 1월 열린 홍콩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에서 직접 볼을 몰고 하프라인 근처까지 나갔다 상대 공격수에게 빼앗기는 바람에 실점위기를 부른 김병지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해보라며 거의 1년간 호출하지 않았다.

웬만한 선수라면 이만하면 포기하고 나가떨어질 법도 한데 잡초처럼 살아온 김병지는 오히려 더욱 정진하는 기회로 삼았다. 속을 끓이기보다는 훈련에 전념했다. 프로였기 때문에 팬서비스 차원에서 보였던 튀는 행동도 과감하게 포기하고 정석에 따른 안정된 플레이를 펼쳤다. 한번 틀어진 히딩크 감독이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지만 국내 프로리그에서 맹활약했다. 결국 지난해 11월말 1년여만에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게 됐고 3월 유럽전지훈련을 통해서 이운재에 뒤졌던 점수까지 만회, 이젠 사실상 주전까지 예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히딩크 감독도 넓은 수비 범위와 순발력에서 국내 1인자로 꼽히는 김병지를 길들이기 차원에서 혹독하게 다뤘지만 이렇게 잘 따라올지는 몰랐다. 요즘은 병지 잘하고 있어를 연발하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병지는 8일 열린 체력테스트인 셔틀런에서도 활동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골키퍼임에도 불구하고 128회까지 버텨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유럽의 필드플레이어 수준이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김병지는 소년의 집 출신이라 한때 고아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도 축구에 대한 그의 열정 때문이다. 밀양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축구화를 신은 그는 키가 작아 고교 1년 때 포기했다가 다시 공을 차기 위해 소년의 집을 찾아갔던 것이다. 이후 금성산전 시절 근무와 훈련을 함께 하며 무명의 설움을 딛고 꿈을 키워왔다. 언제나 불리한 여건에서도 믿을 건 실력밖에 없다며 축구화 끈을 졸라매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를 지켜본 축구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못해도 40세까지는 뛸 것이다라고. 대스타가 된 뒤에도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꾸준히 이를 악물고 더 나아지기 위해 뛰는 모습이 프로의 전형으로 꼽힌다.



양종구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