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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망언 푸틴은 재담

Posted May. 30, 200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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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공개석상에서 보인 대조적인 언동이 화제다.

너무 고단했던 탓일까. 22일 새벽 6시 백악관을 출발, 5일 동안 독일 러시아(24일) 프랑스(26일)이탈리아(27일) 등 4개국을 순방한 부시 대통령은 가는 곳마다 실수하는 걸 잊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의 취재를 담당하고 있는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생거 기자는 28일 이 신문의 기자수첩 코너를 통해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에 트레드밀(러닝머신)을 갖다놓고 건강을 챙기는 부시 대통령으로서도 피로를 이길 수 없는 빡빡한 일정이었다고 동정을 표시했다. 유럽정상들은 부시 대통령이 이만 일어섰으면 할 때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푸틴 대통령은 0시반까지 그를 붙잡아뒀다. 안 그래도 말실수가 많은 부시 대통령이다. 생거 기자는 그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사례1파리 엘리제궁에서의 기자회견. 부시 대통령은 기자의 복잡한 질문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자 무안함을 피하기 위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향해 55세가 넘으면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농담을 건넸다. 70줄에 들어서고 있는 시라크 대통령은 미간을 찌푸렸다.

사례2베를린 기자회견. 그는 러시아가 해체된 핵탄두를 증권으로 발행하도록(securitize)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핵탄두를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secure)고 하려다 말이 헛나간 것.

사례3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관저. 러시아 종교지도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미 독립선언문을 인용, 모든 종교는 양도불가능한(inalienable)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할 것을 양도불가능하지 않은(uninalienable) 권리를 갖고 있다고 거꾸로 말했다.

사례4노르망디 전몰장병 위령탑. 그는 역사적으로 현충일(27일)에 현직 대통령이 미국을 비운 것은 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웹진 슬레이트닷컴의 조사결과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인 89년 이탈리아에서 현충일을 맞이했다.

사례5역시 엘리제궁 기자회견. 미 NBC방송 기자가 자신에게는 영어로, 시라크 대통령에게는 프랑스어로 질문한 것이 피로로 예민해진 부시 대통령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는 잘하는군. 이 친구는 단어 4개를 외워갖고 대륙간 인물처럼 굴고 있어라고 비꼬았다. 이 기자가 프랑스어실력을 입증하려는 듯 프랑스어로 추가질문을 하자 부시 대통령은 인상적이야. 케 부에노(que bueno)라면서 나도 두 가지 언어는 구사할 수 있다고라고 쏘아붙였다.

케 부에노는 스페인어로 얼마나 멋진가라는 뜻이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최근 서방 지도층과의 잇단 회의에서 적재적소의 농담을 구사, 무표정한 얼굴에 싸늘한 느낌마저 주는 이미지를 불식시켰다.

푸틴 대통령은 28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러시아-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위원회 창설회의에서 로마선언에 서명하면서 위원회의 회의장소를 소비에트(위원회란 뜻의 러시아말) 하우스로 부르자고 제안해 참석자들을 포복절도케 했다.

27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럽 최고감사원기구 제5차대회에서 엥겔스 성을 가진 독일 대표를 만나자 다행히 마르크스는 같이 안 왔군요라고 인사해 한바탕 웃음 보따리를 안긴 뒤였다.

푸틴 대통령의 유머감각은 24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도 유감 없이 드러났다.

그는 웃는 얼굴로 부시 대통령을 가리키며 (부시 대통령이) 전화를 걸면 글쎄, 물론, 이건 우리 수준에서 할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말하자면 하면서 대화를 시작하기 일쑤라며 부시 대통령의 흉내를 매우 그럴싸하게 내 좌중을 웃겼다.

진실을 농담처럼 하는 것도 그의 장기. 같은 날 부시 대통령과의 만찬 자리에서 그는 식탁에 캐비아(철갑상어알)가 오르자 어부들이 캐비아를 제왕절개 방식으로 채취한 뒤 철갑상어는 바다로 되돌려 보낸다고 말해 참석자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으나 실제로 확인해 본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홍은택 하종대 euntack@donga.com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