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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순간만 남았다"

Posted May. 31, 200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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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D-1일인 30일 그동안 월드컵을 준비해온 숨은 일꾼들의 가슴은 벅차기만 했다. 월드컵 개막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린 자신들의 땀방울이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됐기 때문이다.

전국 10개 월드컵 축구경기장의 시설 확보와 관리를 담당한 2002월드컵축구대회조직위원회 건축사 김시형(35)씨의 감회는 남다르다.

월드컵 개최가 확정된 뒤 몰아닥친 외환위기로 새로 짓는 경기장 수를 줄이고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건설 계획을 취소하라는 여론이 빗발쳐 선진 축구 인프라 구축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을 땐 정말 아찔했습니다.

98년 10월 잘나가던 건축설계사무소 건축사 자리를 박차고 오로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조직위에 뛰어든 김씨에게 경기장 건설을 취소하라는 것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괜히 목에 힘이 들어가네요. 마치 제가 모든 경기장을 다 지은 것처럼. 사흘이 멀다하고 밤샘했던 힘든 기억도 월드컵이 시작되는 그 순간 눈 녹듯이 사라질 것 같네요. 저의 손길이 닿은 경기장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2년 전부터 상암 월드컵경기장 홍보관과 경기장에서 일본어 안내 자원봉사를 해온 이은형(45주부)씨에게는 이번 월드컵 준비가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전형적인 가정주부에서 사회활동가로 변모하는 계기가 됐어요. 완벽한 봉사활동을 위해 밤마다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일본어 자격증까지 땄고 봉사를 하면서 사귄 일본인 친구들과 e메일까지 주고받는 국제적인 주부로 변신했거든요.

이씨는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려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아직도 우리 국민은 경기가 끝난 뒤 쓰레기를 치우고 질서를 지키는 시민의식이 부족해 아쉽다고 지적했다.

붉은 악마 회원 김홍준(31회사원)씨는 경기장과 길거리에서 응원가와 구호를 외치는 국민이 늘어나는 것을 볼 때마다 이번 월드컵을 위해 작지만 무언가를 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경기가 열릴 때면 언제나 경기장을 찾아 목이 터지도록 응원하곤 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경기장에서 붉은 악마 회원들을 제외하고는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관중이 없어 응원하기가 힘들었어요. 거기에다 붉은 악마가 상업주의에 물들었다는 식의 비난이 쏟아질 때면 맥이 빠지곤 했지요. 98년 초 사업상 붉은 악마와 자주 접촉한 것이 인연이 돼 붉은 악마 회원이 된 김씨는 자신의 승용차에 항상 한국 축구대표팀 유니폼과 축구공을 갖고 다닐 정도의 축구 마니아.

그는 월드컵 개막일 상암경기장에 울려 퍼질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오필승 코리아 등의 함성을 상상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월드컵을 준비해온 숨은 일꾼들은 그동안 힘은 들었지만 세계적인 행사에 동참하게 돼 너무 기쁘다며 이번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치러져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박민혁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