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오피니언] 당백전

Posted July. 22, 2002 23:04,   

ENGLISH

조선 말기 고종의 생부로 실질적인 권력자였던 흥선대원군은 의욕이 넘쳤다. 왕권을 강화해 쓰러져 가는 왕조를 되살려내고자 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이후 거의 300년 동안 손대지 못했던 경복궁 중건계획을 세웠다. 또 외세의 침입에 대비해 국방을 튼튼히 하려고 군사비를 늘릴 심산이었다. 경복궁 중건이나 군사비 조달 모두 엄청난 자금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라 재정은 오랜 세도정치 아래서 극도로 궁핍해져 있었다. 재정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대원군은 당백전()을 발행하기로 한다.

대원군은 1866년 당백전을 찍어내 강제로 사용토록 했다. 당백전은 당시 통용되던 상평통보(엽전)의 100배에 해당하는 큰돈이었다. 중량은 상평통보의 5, 6배에 지나지 않으나 100배의 명목가치를 갖도록 했다. 당백전의 실질가치는 명목가치의 20분의 1도 못 되는 것이었다. 악화()를 발행하여 재정부족을 메워보자는 의도였다. 청나라에서 당천전, 당백전 등을 만들어 썼다고 하니 유통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백전을 기피했다.

상인들도 당백전 받기를 꺼렸다. 포도청을 동원해 강제로 돈을 유통시키려 했으나 무리였다. 그래서 각 관청에서 쓰는 경비를 지출할 때 당백전을 일정 비율만큼 의무적으로 쓰게 한 결과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이 나타났다. 양화()인 엽전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악화인 당백전만이 유통되어 물가가 폭등했다. 1년 만에 쌀값이 6배 이상 치솟았다. 게다가 사람들이 직접 당백전을 만들어 쓰는 바람에 화폐제도는 더 문란해졌다. 마침내 당백전의 발행을 포기했으나 결과적으로 인플레와 체제 위기만 초래했다. 나중에는 청나라 돈까지 수입해 쓸 정도로 돈이 신뢰를 잃었던 것이다.

나라살림이 어려워졌을 때 화폐제도를 바꾸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북한이 쌀배급제를 포기하고 현재 당 1020전에 배급하고 있는 쌀을 앞으로 시장가격인 45원에 판매할 계획이라고 한다. 1원이 100전이니 쌀값이 무려 450배로 오르는 것이다. 앞으로는 전이라는 화폐단위도 없어진다고 한다. 노동자와 군인의 봉급도 1020배 올렸다고 한다. 사실상 화폐개혁이다. 100년 전 조선시대에 발행됐던 당백전이 다시 등장하는 것 같다. 조선은 당시 재정위기를 타개하고 군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당백전을 발행했다는데 지금 북한도 그런 것인가.



박영균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