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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수당은 눈먼 돈

Posted July. 29, 2002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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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10시경 시간외 근무를 확인해 주는 카드인식기가 설치된 서울 시내 한 구청 상황실.

밤 늦게 구청 직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부분 일단 퇴근한 뒤 구청 주변에서 개인 용무를 본 사람들로 다시 구청에 들어가 근무카드를 인식기에 대거나 손가락을 지문감식장치에 댄 뒤 사라졌다. 부당하게 시간외 근무수당을 챙기는 현장이었다.

이날 오후 10시부터 약 40분 동안 상황실을 다녀간 직원은 모두 14명. 절반 정도는 술을 한 잔씩 한 얼굴들이었다.

이처럼 일부 공무원들이 3, 4년 전부터 일부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입하기 시작한 전자식 시간외 수당 확인시스템을 악용해 부당한 수당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정권 말기에 접어들면서 공직사회 분위기가 느슨해진 틈을 타 수당 도둑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부 부처에서는 아예 밤 늦게 퇴근하는 사람에게 근무카드를 일괄적으로 맡겨 단체로 허위입력을 하고 있다.

중앙 정부 부처 공무원 이모씨(32여)는 지문인식 시스템이 설치돼 있는 곳은 그나마 덜한 편이나 카드로 입력하는 부처에서는 당직자에게 카드를 맡기는 수법이 일반화돼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구청에서 근무하는 김모씨(34)는 시간외 근무수당을 조작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박봉의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어쩔 수 없는 관행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이 이런 데도 이에 대한 감독이나 제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감사원 측은 시간외 근무수당을 특별히 관리하는 부서는 없으며 각 부처에 대한 일반감사 때도 시간외 근무수당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부처의 감찰 부서에서 근무했던 박모씨(41)는 시간외 근무 허위 신고는 공무원 사회에서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감찰 부서에서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무원직장협의회 박재범(쎰) 정책기획국장은 공무원들의 시간외 수당 조작은 정권 말기에 접어들면서 복지부동()하는 고위 공무원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하위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도 심해지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건국대 행정학과 하미승() 교수는 시간외 근무수당 제도는 바람직하지만 악용하는 사례가 많은 만큼 제도적 개선책을 강구하고 불시 점검을 강화해 공평성을 저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우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