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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계순희

Posted October. 02, 2002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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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인민영웅 계순희(22)가 졌다.

2일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유도가 사흘째 열린 구덕체육관 앞 매표소에는 오전에 일찌감치 완전매진이란 안내문이 내 걸렸다. 매진 사실을 모른 채 체육관을 찾았던 시민들은 입석표라도 구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야 했다.

무엇이 이렇게 사람들을 불러모았을까. 바로 이날 여자 52급 경기를 가진 북한의 유도영웅 계순희(22)다.

계순희는 명성에 걸맞게 1회전에서 몽골의 분드마 문크바티르를 상대로 업어치기, 밭다리걸기, 안다리후리기로 연속 3개의 유효를 따낸 뒤 경기종료 2분여를 남기고 완벽한 허벅다리걸기를 성공시키며 한판승을 거뒀다.

그러나 계순희는 2회전에서 뜻밖의 상대를 만나 방심했다. 지난해 베이징유니버시아드대회 우승기록이 국제대회 경력의 전부인 중국의 시안동메이의 지능적인 지공작전에 말려 초반에 승부수를 띄우지 못한 채 끌려가다 패한 것.

제대로 잡히면 당해 낼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시안동메이는 초반부터 계순희의 접근을 차단하며 조바심을 유발한 뒤 경기종료 2분여를 남기고 기습적인 업어치기를 시도했다. 기술은 절반쯤 들어갔고 홍콩출신 주심은 즉시 효과를 선언했다. 다행히 한국과 이란 부심이 무효를 선언한 덕분에 포인트를 허용하는 데 그쳤지만 계순희가 심리적으로 쫓기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 이후 계순희는 상체보다는 하체 부분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안동메이는 힘에서도 천하장사 계순희와 막상막하였고 계순희는 종료 39초를 남기고 들어메치기를 시도했지만 주심의 그쳐 선언으로 무산됐고 결국 운명을 판정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주심과 이란 부심이 시안동메이의 업어치기를 유일한 포인트로 인정하는 바람에 1-2 판정패.

불과 16세의 나이로 출전한 96애틀랜타올림픽(48급)에서 우승한 뒤 체급을 52급으로 바꿔 출전한 2001세계선수권 제패로 인민영웅의 칭호를 얻은 유도 영웅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수줍음을 머금은 미소에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태도로 이번 대회 최고 인기스타로 부상해 계순희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큼 한국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계순희. 그러기에 뜻밖의 패배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김상호 hyangs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