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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 현대 조사 않기로 담합했나

Posted October. 09, 2002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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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에 대한 4900억원 대출과 그 사용처에 대한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도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이 노골적으로 조사를 회피하고 있다. 마치 정부가 현대 조사는 하지 않기로 담합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금융실명제법을 내세워 계좌추적 불가()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공정위는 계좌추적은 물론 현대상선의 부당내부거래 혐의에 대한 조사조차 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국세청 또한 뚜렷한 탈루혐의가 없다며 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태도다. 현대상선은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도 모르게 거액을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았고 대출서류에는 김충식 당시 현대상선 사장의 서명이 빠져 있었다. 대출사실은 은행연합회의 여신정보현황(CRT)에도 누락됐다. 산은은 업무상 잘못이 드러나면 실무자를 처벌하겠다고 밝혀 부당대출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그런데도 금감원이 조사에 나서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금감원 노조가 특별검사와 계좌추적으로 현대상선 자금을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금감원 주장이 잘못됐음을 말해주고 있다.

정부 및 산은은 그동안 현대상선 대출금이 계열사 지원에 쓰였다며 대북 비밀송금 의혹을 부인했다. 공정위는 7월부터 조사해온 대기업집단 내부거래공시() 이행점검에서 200여건의 위반 혐의를 적발하면서도 현대상선의 계열사 부분은 빼놓았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더구나 앞으로도 부당내부거래 혐의를 조사하지 않겠다고 하니 공정위는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기관인지 궁금하다. 현대상선이 본사와 해외현지법인간 거래에서 비자금을 마련했다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지만 국세청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 정도로 정부기관들이 방어에 필사적이다시피 한 것은 진실이 밝혀질 경우 정권 차원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 아니냐는 새로운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봐주기 담합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세 국가기관은 당장 본연의 역할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