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서 조사를 받다가 사망한 살인사건 용의자 조천훈씨가 수사관들에게 구타당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수사관들의 가혹행위가 죽음과 직접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으나 이번 사건은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고문수사의 망령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 과거 군사정권의 가혹한 고문 피해자였으며 인권의 가치와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해 온 국민의 정부에서 이처럼 고문수사가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극명한 대비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국가인권위원회까지 신설한 김 대통령의 정권 말기가 이 같은 고문수사와 도청 감청 등 반인권적 행위로 얼룩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에서 고문 행위가 어느 정도나 이뤄졌는지 정확한 진상이 파악되어야 한다. 구타 이외에도 잠 안 재우기 등 다른 가혹 행위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만큼 철저한 규명이 필요하다. 수사관들은 조사과정과 피의자 조씨의 자해 행위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일부 구타가 있었다고 시인하고 있지만 이처럼 단순한 구타가 어쩌다 상대방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는지 그대로 믿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이명재 검찰총장은 한 점 의혹 없는 수사를 지시했지만 검찰이 저지른 잘못을 검찰이 수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지 의구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수사과정에서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책임은 결국 검찰에 있다.
이번 고문 행위는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 수사에서 구타 밤샘수사 욕설 등 잘못된 관행이 여전하다는 것은 법조계 주변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는 어느 때, 어떤 상황에서도 보장되어야 한다. 특히 수사 과정의 인권 보호는 민주국가로서 가장 기본적 책무이며 정부가 인권 신장의 거창한 구호를 열번, 백번 외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