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현행 투표권 행사방식을 보다 많은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를 보장하는 쪽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투표소의 투표방법은 비장애인 위주로 되어 있어 수많은 장애인과 병약한 독거노인들의 참정권 행사를 사실상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현행 투표권 행사방법으로는 병약자들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투표소에 가야 하지만 실제로 갈 마땅한 방법이 없고 아울러 투표와 관련된 정보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장애인은 118만명, 독거노인은 61만명으로 전체 유권자 3501만여명의 5%에 달한다.
행정편의적 투표 방식뇌성마비 1급 장애인 박성현(33서울 광진구 중곡동)씨는 올 6월 지방선거 때 투표소에 전동스쿠터가 올라갈 경사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동사무소 직원 4명이 그를 들어올렸다. 박씨는 장애인들도 당연히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투표소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며칠 전 동사무소에서 보낸 거소()투표 신청서를 받았다. 거소투표는 신체장애인이나 병원 등에 오래 입원해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자신의 거소에서 투표할 수 있게 한 제도. 그러나 박씨는 동사무소의 배려를 단호히 뿌리쳤다.
집에서 투표하라는 건 장애인들은 아예 투표소에 오지 말라는 이야기로 옳지 않아요. 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지요.
장애우 권익문제연구소가 올 8월8일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 서울지역 3개 선거구 97개 투표소를 조사한 결과 장애인용 경사로를 설치한 투표소는 절반 이하(45개)였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장애인들이 출입하기 어려우면 투표소 근처 거리와 자동차 안에서 투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프랑스는 장애인에게 투표소를 오갈 수 있는 교통비를 지급하고 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강민수() 간사는 정부가 장애인에 대한 거소투표제를 내세워 투표소를 비장애인 위주로 만드는 것은 행정편의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정보와 지원 부족특히 병약한 독거노인들은 투표권 행사에 속수무책이다. 선거 관련 정보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는 데다 운신하기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혼자 살고있는 김태분(74)씨는 3년 전 중풍에 걸려 몸 왼쪽이 마비됐다. 최근 상태가 나아졌지만 부축 없이는 발걸음도 떼지 못한다.
김씨는 외출할 때는 윗집에 세든 노숙자 3명이 업고 길가까지 데려다 주곤 하지만 선거 때도 이들이 도와줄지 모르겠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통반장에게 거소투표 신청을 할 수도 있지만 독거노인 대부분은 이런 제도를 모르고 있다.
서혜경() 한림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몸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은 정부의 인식 부족으로 투표에 대한 정보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다며 투표권뿐만 아니라 이들의 삶의 질을 염두에 두는 행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