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가 한나라당이 제기한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북지원 의혹과 관련해 엉뚱하게 통치행위론을 들고 나왔다. 통치권 차원의 일이었다면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므로 덮어야 하고, 이는 법학통론에 나오는 상식이라고 주장했다. 모두 터무니없는 얘기다.
헌법학에서도 통치행위가 사법심사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긍정설과 부정설이 대립하는데 그게 왜 상식인가.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 부당편법대출 의혹까지 통치행위로 인정하는가. 무릇 통치행위라 함은 개헌발의 은사행위 외교행위 등과 같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일컫는 것이고, 통치행위 여부에 대한 최종판단은 사법부의 몫임을 밝혀둔다.
문 실장이 김대중 대통령이 한 것은 아니라고 믿지만이라고 전제한 것도 논리가 엉켜 있다. 그러면 대통령 말고 누가 통치행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국민적 의혹을 받고 있는 사안에 대해 곧 새 정부의 실력자가 될 사람이 어떻게 무책임하게 가정법으로 언급할 수 있는가.
아닐 것이다. 집권자나 청와대는 알고 있을 것이다는 그의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대북지원 의혹의 핵심인물인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이 장기간 외국에 체류하다 대선 직후 귀국해 통일부장관을 만나고 북한에 간 것 역시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의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당장 진상을 밝혀야 한다. 알고도 밝히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다. 문 실장이 그걸 파헤친다고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한 것은 사리에 어긋난다. 진실을 안 뒤에야 국익을 논할 수 있는데, 국익을 내세워 진실을 묻으려는 발상 자체가 권위주의적이다. 국익에 부합하는지 여부도 그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니다.
한가지 현 정부가 의혹을 털고 가야 한다는 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현 정부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책임은 당연히 새 정부에 이월된다. 진상규명에 시한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