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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통령의 약속

Posted March. 14, 2003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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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링컨의 별명은 정직한 에이브였다. 그는 24세 때 가게를 운영하다가 동업자를 잘못 만나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됐다. 당시 법으로는 파산을 선언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링컨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아 결국 부채를 모두 갚았다. 그의 정직함을 말해 주는 일화다. 링컨은 시골 우체국장으로 일한 적이 있다. 링컨이 맡았던 우체국이 폐쇄되고 몇 해가 지난 뒤 정부에서 우편요금 등 미수금을 받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 링컨은 낡은 상자 안에서 양말을 꺼내더니 그 안에서 수많은 동전을 쏟아냈다. 계산해 보니 금액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링컨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사랑받는 것은 남북전쟁의 승리나 노예해방 같은 업적을 남긴 덕분이기도 하지만 남다른 정직성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약속을 지키고 정직을 유지하는 것은 소중한 미덕이지만 링컨처럼 이를 평생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인간의 정직성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감동을 주기 마련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경남 진해의 한 중학교를 방문했다. 2년 전 이 학교를 찾은 자리에서 대통령이 되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학생들이 약속 지키는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미국의 링컨 같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것은 그의 역할 모델이 링컨임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그가 존경하는 인물이 링컨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고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가 평소에 원칙을 강조하는 것은 링컨의 정치철학과 일치한다. 출신 배경, 직업 등 여러모로 두 사람은 닮은꼴이다. 책 제목과는 반대로 만약 링컨이 노 대통령을 만난다면 어떤 충고를 들려줄 수 있을까.

대통령은 수많은 약속을 할 수밖에 없는 자리다. 이미 후보 시절 많은 약속을 했을 것이다. 지금도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저런 희망 사항을 내놓을 것이고 그중에는 약속을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게 분명하다. 한번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 하지만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어찌할 것인가. 역시 솔직하게 털어놓는 정직성이다. 링컨이 그에게 충고의 말을 던진다면 무엇보다 정직을 말하지 않을까. 중학생들 앞에서 한 2년 전 약속을 지켰듯이 그가 임기를 마치는 5년 후 국민 앞에서도 약속을 지킨 대통령 정직한 대통령의 모습으로 비치기를 기대한다. 그것만으로 그는 역사의 승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