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세풍()사건 수사결과 발표 직전 한나라당이 관련자들에 대한 공소취소를 공식 요구하고 나선 것은 법질서와 검찰권을 경시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대선자금을 수사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를 들고 있으나, 이는 사건의 본질과 관련 없는 주장이다. 5년간이나 끌어온 세풍의 초점은 집권당이 국세청을 동원해 166억원의 대선자금을 모금함으로써 세정질서를 문란케 한 것임을 한나라당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검찰이 법원에 제기한 공소를 거두어들이는 공소취소는 소송조건 흠결, 적용법조 폐지 등 공소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될 때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제도다. 세풍 관련자들이 그중 어디에 해당되는가. 정치논리에 의한 공소취소 요구는 전례에도 없는 일이다. 물론 수사배경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까지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적 심판의 대상은 배경이 아니라 결과다.
검찰의 발표내용을 보면 세풍의 정황이 더욱 명확해진다. 그동안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이 자발적으로 모금에 나선 것이라고 말해온 서상목 전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해명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한나라당 핵심관계자들과 국세청 고위간부들이 공모하고 협력해 기업들을 상대로 후원금 납부를 독려한 과정이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한나라당의 때늦은 과거청산 차원의 정치적 종결 논리도 설득력이 없다. 지난 일이라고 묻는 것이 청산은 아니다. 더욱이 공소취소는 훗날 시빗거리만 남길 뿐이어서 청산과는 거리가 멀다. 한나라당이 법 논리를 벗어난 공소취소를 요구하면서 검찰의 중립을 얘기하는 것도 모순이다. 당연히 여권의 비리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처벌을 촉구할 명분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세풍이 왜곡되고 부풀려졌다고 주장해온 한나라당의 공소취소 요구는 자기부정이 아니냐는 의문을 낳고 있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법정에서 당당히 무죄항변을 하는 게 정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