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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잡초

Posted May. 09, 200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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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교수에서 농사꾼으로 변신한 윤구병씨는 잡초는 없다고 단언한다. 잡초의 사전적 의미는 경작지 도로 빈터 등에서 자라며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풀, 혹은 잘못된 자리에 난 잘못된 풀이다. 사람에게 유용한 식물이냐 아니냐를 따져 잡초라고 이름 붙였기 때문에 인간 중심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야생초 편지를 쓴 생태운동가 황대권씨는 잡초를 야생초로 바꿔 부르자고 제안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식물은 35만종이나 되는데 인간이 재배하는 식물은 3000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식물을 잡초로 무시해 버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잡초는 인간에게 귀찮고 성가시며 심지어 해를 끼치는 존재로 알고 있지만 실제 효용가치를 따져보면 인식의 오류임이 드러난다. 어떤 잡초들은 긴 뿌리를 이용해 땅속 깊숙한 곳의 무기물질을 끌어올려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 왕성한 번식력으로 짧은 시간 내에 맨땅을 녹색으로 뒤덮어 토양 유실을 막고 환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인간이 아직 잘 모를 뿐이지 잡초 중에는 난치병을 치료하는 약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풀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쯤 되면 아무리 하찮은 식물이라도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풀은 없다는 생각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잡초론()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지역감정을 이용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정치인을 마땅히 제거되어야 할 잡초에 비유했다. 잡초들이 이 얘기를 들을 수 있다면 누구보다 발끈할 것 같다. 인간에게 내몰리는 것도 서러운데 수준 낮은 정치인과 우리가 비교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물론 노 대통령이 말하려는 잡초라는 뜻은 환경생태학자들이 말하는 잡초와는 다른 의미일 것이다. 국민이 환멸을 느끼는 저질 정치인을 지칭할 터이다. 그럼에도 여야 의원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은 이 말에 숨어 있는 다른 정치적 의미 때문이다.

잡초가 보는 사람에 따라 나쁜 풀이 될 수도 있고 사랑스러운 야생초가 되기도 하듯이 문제는 대통령의 통치관이다. 청와대가 운동권 출신들로 메워지고 정부 정책에서 개혁과 비개혁을 나누는 일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런 식의 발언은 편 가르기로 비치게 된다. 잡초인가 아닌가, 개혁인가 아닌가를 가리는 일이 쉽고 분명하다면 모르지만 요즘은 다양성의 시대이고 불확실성의 시대다. 농사일만 해도 잡초에 손을 안대는 유기농이 더 큰 수익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나라가 잘 될 수 있다면 잡초와의 동거도 고려할 일이다. 그 잡초가 나라에 해롭지만 않다면 말이다.

홍 찬 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