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처럼 몰아치던 이승엽(27삼성)의 홈런포가 주춤거리고 있다.
6월 들어서자마자 9개의 홈런을 몰아쳤던 이승엽은 개인통산 300홈런에 2개를 남겨두고 상대팀의 집중견제로 3경기 째 홈런을 날리지 못했다. 그가 3경기 동안 홈런을 기록하지 못한 것은 6월 들어 처음. 하지만 팀은 승승장구하며 7연승을 달려 1위 탈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른바 이승엽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6월10일 사직 롯데전에서 이승엽이 하루에 3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개인통산 297호를 기록한 뒤부터 상대팀의 견제가 부쩍 심해졌다. 이후 6경기에서 이승엽이 얻은 볼넷은 무려 10개. 포수가 일어나서 공을 받는 고의볼넷은 없지만 사실상 의도적인 볼넷이 많다. 투수들은 스트라이크가 아닌 유인구를 주로 던진다. 속으면 좋고 아니면 거르자는 식이다.
상대팀에선 승리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 큰 것 한방 잘못 맞으면 승부를 그르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중들은 맥이 빠진다. 18일 잠실 경기에선 5회 이승엽이 볼넷을 얻자 흥분한 한 삼성팬이 운동장으로 뛰어들어가기도 했다.
투수들이 스트라이크를 안 던지는데 이것저것 마구 방망이를 휘두를 수도 없다. 나쁜 볼에 손을 대면 타격밸런스가 흐트러지기 때문. 이승엽이 무더기 볼넷을 얻는 데는 유인구에 속지 않는다는 점도 작용한다.
이승엽은 아직 침착하다. 그는 99년 이런 일을 한차례 경험해 보지 않았는가. 급할 것 없다. 내 타격페이스만 지키면 홈런은 터지게 돼 있다며 여유만만. 다만 잠실구장에서 올해 홈런이 하나도 없어 이번에 뭔가 보여주려고 했는데 홈런을 못쳐 아쉽다고 말했다.
아홉수라는 게 있다. 대기록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일시적인 슬럼프에 빠지거나 경기가 잘 안 풀릴때 아홉수에 걸렸다고 한다.
해태시절 김응룡 감독은 프로야구 최초의 1100승감독이 되기까지 1099승이후 6연패를 해야 했고 2000년 정민태(현대)는 19승에서 20승으로 가기까지 한달 열흘이 걸렸다.
아홉수는 우리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 20승과 사이영상 수상을 각각 6차례 기록한 로켓맨 로저 클레맨스(뉴욕 양키스)같은 대투수도 올 시즌 개인통산 300승에 1승 남겨놓고 3경기 선발등판에서 2패만 기록하며 아홉수에 시달렸다.
이승엽은 99년 시즌 최다홈런 경신에 1개를 남겨둔 상태에서 1주일간 홈런을 못 치다가 8월2일 대구 롯데전에서 문동환을 상대로 43호를 터뜨린 적이 있다.
요즘 삼성과 맞서는 팀들은 삼성이 아니라 이승엽을 상대하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대기록의 제물이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승엽 덕분에 다른 타자들에 대한 견제는 소홀한 편. 이승엽의 바로 뒤인 4번에 포진한 마해영은 18일 잠실 LG전에서 3타수 1안타 3타점을 기록한 뒤 내가 감독이라도 이승엽을 거르고 나와 정면승부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로선 대환영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이승엽이 볼넷을 자주 얻음에 따라 주자가 루상에 모일 기회도 덩달아 많아지고 막강한 삼성 타선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올 시즌 평균득점이 5.7점인 삼성은 최근 7연승을 하는 동안 경기당 6.7점을 뽑아내 게임당 1득점이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