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로 진행되는 국제학술대회에서 논문을 발표할 때 발제자들은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자구 하나 하나에 매달려 노심초사한다. 국제적 매체에 글을 게재할 때는 더욱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잘못된 표현으로 인한 오해나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외국어에 자신이 있더라도 가능한 한 많은 외국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위해 애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다반사다. 그럴 경우 책임은 전적으로 발제자에게 있으며, 발제자를 도와 준 이들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
국정홍보처가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한국 언론인을 비하하는 기고를 한 정순균 차장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대신 한글로 초고를 쓴 해외홍보원과 이를 번역한 외신협력관에게 경고조치를 했다. 국제회의에 한 번이라도 참석한 사람이라면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외국 잡지나 신문에 기고를 해 본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정 차장의 기고는 반박문의 성격을 지녔다. 상대방의 글에 대한 논리적 대응으로써 보다 적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사전에 많은 논의와 숙의를 거쳤을 것이 자명하다. 오류나 부주의로 인한 단순한 실수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정 차장은 우리 언론을 지나칠 정도로 폄하하고, 언론인들을 정권과 유착해 비리를 저지르는 존재로 묘사했다. 그런데도 정 차장과 국정홍보처 관리들은 본의가 아니었다 기고문이 번역된 뒤 해외홍보원의 외신과장이 송고했고 나는 신문에 실릴 때까지 보지 못했다는 무책임한 해명을 쏟아냈다. 심지어 정기적으로 돈 봉투를 건네고 있다는 문구에서 regularly는 가끔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다라며 영어 뜻까지 왜곡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정부측이 동원한 해명 논리가 결국 현실화됐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은 셈이 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허물을 감싸주고 앞장서서 책임을 지는 것이 미덕으로 추앙되어 왔다. 그래서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믿고 충심을 다하여 섬기고, 윗사람은 보호막이 되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번 사태는 국가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정부기관의 그릇된 언론관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윗사람이 책임을 부하에게 전가하는 몰염치까지 드러냈다. 이러한 추태를 국내에서 보이는 것도 낯을 붉힐 일인데, 외국에까지 확대해 국가적 신뢰를 저해하고 망신을 샀다.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비아냥거림이 만연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 선 기 객원논설위원성균관대 언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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