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년 만에 다시 찾아간 앙코르 유적지 시엠리아프(캄보디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공항 청사는 깔끔하게 단장됐고 공항과 시내를 잇는 도로에는 가로등도 가설됐다. 평양으로부터 파견된 여성 접대원이 10명이나 있는 북한의 평양랭면식당도 뜻밖이었고 몇 명뿐이던 한국인 가이드가 43명으로 늘었다는 사실도 놀라왔다. 3년 전 공사 중이던 소피텔 체인(프랑스)의 로얄 앙코르 호텔(2000년 10월 개관)도 문을 열었다. 시내에는 새로 지었거나 짓는 중인 건물도 많았다. 그러나 변치 않은 것도 있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아름다운 미소, 유적 보호를 위해 4층을 넘기지 않는 키 낮은 건물, 그리고 동양 관광객만 보면 몰려와 집요하게 물건을 파는 어린이들.
도착 다음 날. 앙코르 톰부터 찾았다. 한 변이 3km나 되는 돌 벽에 둘러싸인 거대한 정사각형의 도성 앙코르 톰. 시엠리아프 주변의 드넓은 고고학 유적지에 산재한 100여 개 가운데 앙코르 와트(사원)과 함께 백미로 손꼽히는 걸작의 유물이다. 이 성에 들어가는 문은 모두 다섯 개. 그러나 관광객은 가장 화려한 남문을 주로 이용한다.
관음보살의 얼굴과 코끼리 조각과 비슈누 등 힌두교 신의 부조()로 장식된 화려한 문루, 해자(성곽 주변 물)에 놓인 다리 좌우 난간에 도열한 반인 반수의 나가(크메르인이 믿었던 뱀 신)상과 수십 개의 석상, 컴퓨터 게임의 블록 쌓기를 연상시킬 만큼 짜임새 있게 맞물린 돌조각 성벽(높이 8m) 등등.
성문을 지나 1km를 가니 바이욘 사원이 보인다. 크메르의 미소라고 불리는 관음보살의 얼굴이 돌탑 사방을 장식한 사면 상이 있는 곳. 1863년 프랑스인 앙리 무오(앙코르 유적에 관한 기록을 남긴 최초의 유럽인)의 장엄한 폐허라는 기록과 달리 바이욘은 어느 정도 제 모습을 되찾은 상태다. 1세기 이상 걸린 복원 사업의 결과다.
사원 1층에는 두 개의 회랑이 있고 그 회랑 벽은 거대한 부조로 장식돼 있다. 그 중 제1회랑(동서 160m 남북 140m)의 부조. 앙코르 왕조 최 전성기의 자야바르만 7세(11811219)가 인근 톤레사프 호수에서 참파 군과 벌인 해전과 서민 및 궁중과 귀족의 생활상이 담겨 있다.
한 층위로 올라서면 테라스(옥상의 야외). 탑(높이 64m)을 중심으로 16기의 첨탑이 주변에 둘러선 형태다. 은은한 미소의 관음보살 사면 상은 이 주변 첨탑의 벽체다. 사면 불은 196개나 됐다지만 현재 남은 것은 32개 뿐이다. 힌두교를 신봉하던 앙코르 왕조에서 관음보살이 등장하게 된 것은 자야바르만 7세의 불교 공인이 계기. 바이욘은 지상에 구현된 힌두교의 우주 중심인 메론 산이고 우주의 중심에서 사방을 향해 인자하게 미소 짓는 관음보살은 곧 신성한 왕도 앙코르의 주인인 자야바르만 7세 자신을 나타낸다.
1431년 앙코르 톰을 점령한 아유타야 왕조. 이들은 도성과 사원의 불상과 신상,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장식물을 파괴하거나 탈취한다. 황금과 유물을 탐해서가 아니라 크메르인의 정신에서 신의 존재를 파괴함으로써 권토중래의 의지를 뽑아 버리기 위해서다. 이후 서양인에게 발견될 때까지 400여 년간. 앙코르는 밀림 속에 버려진 채 기록에서 사라진다. 그 동안 돌로 지은 성과 사원은 스러지고 허물어져 밀림의 일부가 된다. 그 폐허의 모습은 앙코르 톰의 따 프롬 사원에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앙코르 톰에서 유일하게 19세기 중반 발견 당시 모습 그대로 남겨진 곳이다. 사원의 돌 벽을 움켜 쥔 듯한 형상으로 뿌리 내린 거대한 보리수와 명주솜 나무의 모습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폐허가 된 것은 자연의 탓만은 아니다. 인재이기도 하다. 바이욘 근처의 폐허 바푸온 사원(1060년 완공)을 보자. 이 거대한 사원은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다. 완전 해체 후 조립하는 복원 작업이 지반침하로 실패했기 때문. 피라미드처럼 사원 내부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으로 믿은 사람들의 소행이라는 말도 들렸다.
그 뿐일까. 1876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해 크메르의 앙코르 유적이 소개된 후 캄보디아는 수집가의 표적이 됐다. 수많은 조상()이 끊임없이 밀반출됐다. 프랑스 문화장관을 지낸 전위 작가 앙드레 말로(19011976). 그는 1923년 앙코르 톰 부근의 사원 반테아이스레이에서 핵심 조각 몇 점을 훔쳐 밀반출하려다가 프놈펜에서 체포돼 실형을 선고 받고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 현장 반테아이스레이를 보자. 사원 외벽을 장식한 불상 가운데 머리가 붙어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앙코르의 석양. 바이욘에서 만나는 크메르의 미소만큼이나 인상적이다. 해질녘 앙코르 와트의 중앙 탑 아래 테라스에 올라가면 서쪽으로 이어진 긴 참배길 너머 서편 하늘로 붉은 노을이 펼쳐진다. 거기 걸터앉아 지친 다리를 쉬게 하며 감상하는 석양의 노을. 매일 반복되는 해넘이처럼 역사도 반복된다. 침략으로 노획한 노예의 피땀으로 일으킨 왕국의 영화, 그리고 노예의 후예에 의해 왕국이 붕괴되는 과정의 반복. 그 평범한 역사를 우리는 앙코르에서 본다. 유물은 제 자리에서야 그 빛을 발하는 것. 앙코르의 모든 유물이 제자리에 돌아와 이 아름다운 시엠리아프의 석양에 발갛게 다시 물들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