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수확기를 맞은 농촌 들녘이 수확량 감소와 낮은 수매등급, 인력난으로 시름에 젖어 있다. 올여름 잦은 비로 일조량이 줄어들고 태풍 매미 피해까지 겹쳐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지만 실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낮아진 수매등급=산물벼를 수매하고 있는 충북도 내 28개 미곡종합처리장의 경우 특등품과 1등품 판정이 지난해보다 14%포인트 줄어든 반면 2등품과 3등품은 15% 이상 늘었다.
농협미곡종합처리장 검사원들은 가능한 한 높은 등급을 주려고 하지만 대부분 산물벼의 제현율(벼를 도정해 현미가 되는 비율)이 특등품 기준(82%)은커녕 1등품 기준(78%)에도 못미친다고 말했다.
경북 최대 미곡처리장인 경주 안강농협미곡종합처리장 황도석 판매과장(45)은 지난해 40kg들이 13만가마를 도정했으나 올해는 목표치(17만가마)를 달성하지 못할 것 같다면서 예상보다 쭉정이가 많아 농민 소득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 이종진씨(49충북 청원군 오창면 서부리)는 지난해에 단보당 벼 18가마(40kg)를 생산했는데 올해는 15가마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면서 소득이 2000만원 가까이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경호씨(41전북 임실군 오수면)는 벼가 익을 무렵 기온이 낮아 도열병과 잎말이나방이 특히 심해 등급도 낮고 수확량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인건비는 껑충=낮은 수매등급에 멍든 농민들은 인건비가 오른 데다 일손마저 부족해 더욱 애를 태우고 있다. 현재 벼베기 품삯은 평균 5만6만원 선(남자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1만원 정도 올랐지만 그나마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일이 편하고 임금이 많은 공사현장이나 수해복구현장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송재원씨(71청원군 강내면 사인리)는 지난해보다 품삯을 더 줘도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두 아들 내외까지 벼베기를 돕고 있다며 인건비, 농약값, 비료대금, 농협에서 빌린 돈 등을 빼면 손에 남는 돈은 몇 푼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창식씨(46경북 의성군 단북면)는 태풍 매미로 수확량이 줄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일손마저 부족해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면서 내년부터는 아예 농사를 짓지 않거나 전업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기계 대여료도 올라 콤바인을 빌려 200평 크기 논의 벼를 베는 데 드는 작업료가 4만20004만4000원으로 지난해보다 20003000원 올랐다.
수매자금 이자도 부담=농협미곡종합처리장들도 운영난을 걱정하고 있다. 수매량이 줄어든 데다 정부가 벼수매자금에 대해 2001년과 2002년에는 부과하지 않던 이자를 물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 이자는 4%다.
충북 옥천농협미곡종합처리장 김영인 상무(47)는 정부수매자금이 지난해보다 줄어든 데다 이자까지 내야 해 자칫 적자가 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전국미곡종합처리장조합원 연합회는 정부에 수매지원자금에 대한 이자를 지난해와 같이 물리지 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