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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찰의 날에

Posted October. 21, 2003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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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투캅스는 구악 경찰과 신참 경찰의 얘기를 코믹하게 버무려 큰 인기를 끌었다. 경찰은 이 영화가 조직의 이미지를 개선해 줄 것으로 기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개봉 무렵 경찰의 실상과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결국 영화 첫 부분에 본 영화는 특정 경찰과 관계가 없습니다란 자막을 넣기로 강우석 감독과 타협이 이루어져 영화가 개봉됐지만 관객들은 이 대목에서부터 폭소를 터뜨렸다. 흥행은 대성공이었고, 경찰도 더 말을 하지 못했다.

중국의 경찰은 공안()이다.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미국의 경찰 폴리스(police)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였던 폴리스(polis)가 어원으로 도시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세력이란 의미다. 한국의 경찰은 보다 심오한 의미를 갖고 있다. 경()은 공경 경()과 말씀 언()이 합쳐진 글자로 말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새길 수 있고, 찰()은 성찰() 고찰() 등에서처럼 살피다 또는 헤아리다는 뜻이다. 경찰은 거친 말과 물리력이 아니라, 부드러운 말과 공손한 태도로 시민을 살피는 공권력이란 의미다.

경찰 최고위 간부 P씨가 일본의 경찰학교를 방문했을 때였다. 경찰학교장의 책상 위에는 경찰청장이 붓으로 직접 쓴 지휘서신이 있었다. OOO 경찰학교장 귀하. 귀하의 임무는 일본의 치안과 질서를 수호할 정예경찰을 양성하는 데 있다. 그럴 능력과 자질이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과감히 잘라내는 것 또한 귀하의 임무다. P씨는 특히 마지막 구절이 더욱 가슴에 닿았다고 한다. 제대로 된 한 사람의 경찰관을 길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를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본 경찰은 초임 경찰에게 수사기법에 앞서 민원인 친절하게 대하기를 더 열심히 가르친다고 한다.

어제가 쉰여덟 번째 경찰의 날이었다. 변변한 잔칫상 하나 받지 못한 채 15만 경찰가족(경찰관 9만여명, 전의경 5만여명)이 이날도 민생치안의 최일선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 경찰은 1인당 담당인구가 523명으로 미국(319명) 영국(468명) 독일(294명)에 비해 많고, 2교대 근무의 경우 법정근로시간의 2배인 주 84시간을 근무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순찰지구대(파출소)에서 취객의 행패에 시달리고, 시위현장에서 돌팔매질을 당하며, 눈비 오는 날 남의 나라 대사관 주변 노상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또한 우리 경찰의 현주소다. 경찰이 피곤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