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시위에 몸살 앓는 경찰=민주노총은 9일 서울시청 앞 광장 등 서울시내 곳곳에서 금속산업연맹 건설운송노조 사무금융연맹 전교조 언론노조 등 9개 산업별 노조원 3만5000여명(경찰 추산)이 참가한 가운데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경찰은 이날 전국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전의경 254개 중대(약 3만여명) 가운데 128개 중대 1만5000여명을 이 대회 경비에 투입했다.
나머지 126개 중대는 미국 관련 시설과 정당 당사 등 주요 시설 경비(28개 중대) 핵 폐기장 반대 시위에 대비한 부안 현지 파견(24개 중대) 국회 공항 등 일상적 경비(35개 중대)에 배치됐으며 다른 중대는 대부분 전날 철야근무를 해 동원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이라크 파병 반대 2차 국민대회가 열린 지난달 25일에도 서울 강남경찰서 방범순찰대를 제외한 서울시내 31개 경찰서의 방범순찰대 대원 전원이 집회 경비에 투입됐다.
올해 초부터 반미시위, 화물연대 파업, 농업개방 반대 농민시위, 전북 부안지역 핵 폐기장 반대 시위 등 굵직한 시국 현안이 잇따라 발생하고 고정적인 경비 수요가 늘면서 민생치안에 투입될 경찰력마저 시국 치안에 동원되고 있다.
경찰서마다 1개 중대씩 배치된 방범순찰대의 기본 임무는 민생 범죄를 미리 예방하는 것. 하지만 이들이 경비에 동원되는 일이 잦아 도보 순찰하는 경찰은 요즘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잇따르는 강력범죄=경찰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경찰관을 볼 수 없다는 시민들의 불평이 쏟아지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살인(4.2%) 강도(32.7%) 강간(5.7%) 절도(11.3%) 폭력(4%) 등 각종 범죄가 모두 늘었다. 특히 강도는 올 들어 9월까지 5912건이 발생해 지난해 5906건을 이미 넘어서 지난 10년간 최고기록을 세웠다.
경찰청 박재현() 방범기획과장은 당장 눈에 보이는 집회 시위를 막느라 방범 활동은 자꾸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의 자세도 문제=민생치안 부재 상황에는 경찰 스스로의 책임도 상당 부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올 7월부터 10월까지 동대문, 남대문시장에서 새벽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여성 상인을 상대로 한 퍽치기 사건이 29건이나 일어났지만 경찰은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가 이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후에야 전담 검거반을 편성하는 등 늑장 대응을 하기도 했다.
특히 4월 서울 송파구 삼전동 일가족 3명 피살사건을 비롯해 올 들어 다수의 대형 살인사건이 일어났으나 경찰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에는 강력사건이 일어나면 경찰 총수가 사건을 직접 챙기는 등 범인 검거시까지 경찰 전체가 긴장을 늦출 수 없었지만 최근에는 웬만한 민생치안 관련 사건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