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오피니언] 뉴 타운

Posted November. 09, 2003 23:17,   

ENGLISH

미국의 남부 항구도시 뉴올리언스에 가보면 프렌치 디스트릭트라 불리는 구도()가 있다. 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이 현저히 약화된 지금 뉴올리언스는 프렌치 디스트릭트에 모여드는 관광객들이 뿌리는 돈으로 먹고 산다. 관광이라야 사실 별게 없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작가 테네시 윌리엄스가 살았던 허름한 집을 보고, 창고 같은 곳에서 개최되는 재즈 음악회를 듣고, 프랑스풍 가옥이 늘어선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맥주집에 들러 목을 축이는 게 고작이다. 캐나다의 퀘벡에도 초기 이주민이 정착한 고도()가 있는데 역시 관광명소로 이름을 날린다.

한양()은 한강의 북쪽(), 그러니까 요샛말로 하면 강북의 옛 지명이다. 한양은 사대부, 상인, 군속의 거주지였으며 신분에 따라 사는 지역이 달랐다. 왕이 살았던 창덕궁을 중심으로 동촌 서촌 북촌 남촌이 형성되었는데 조선의 지배세력인 서인은 서촌(서대문 일대)에, 노론은 북촌(청운동)에, 소론은 동촌(이화동, 원남동)에, 그리고 남인과 무반은 남촌(남산동, 회현동)에 각각 살았다. 아래대로 불렸던 동대문과 을지로 일대는 주로 상인들의 거주지였다. 근대화의 첨병인 각종 상인들이 청계천변에 운집한 것에는 그럴만한 역사적 근거가 있다. 그런데 사대부들이 군침을 흘렸던 최고의 노른자 땅은 경복궁 동십자각 근처의 송현동이다(한국일보사 부근). 그곳에 노론의 세력가였던 심상규의 호화저택이 있었는데 얼마나 사치스러웠던지 왕실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강명관, 조선의 뒷골목 풍경).

대한민국의 고도인 한양이 산업화 과정에서 옛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것은 아쉽기 그지없다. 몇 개의 왕궁과 가회동, 남산골에 남아 있는 고풍 가옥을 제외하고 한양의 흔적은 개발 한국에 완전히 먹혀 버렸다. 광복 후 위정자들이 현대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유산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탓이다. 권위주의 정권을 정당화하려고 국가중심적 사고와 위계질서의 전통적 덕목을 강조했던 것과 무척 대조적이다.

강북에 뉴 타운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폭등한 강남 아파트 값을 억제하고 강남에 몰리는 주택수요를 분산시키려는 의도이지만 이른바 올드 타운 지역에 뉴 타운을 건설한다는 것이 왠지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뉴 타운이 본래의 취지를 성취할 수만 있다면 좋을 터인데, 행정수도 이전도 추진되고 있는 만큼 차제에 진짜 올드 타운을 복원하는 것도 생각해봄 직하다.

송 호 근 객원 논설위원서울대 교수

hknso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