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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라크 파병, 미국이 변했다면

Posted November. 14, 2003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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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이라크 전략이 내년 중 조기 주권 이양 및 상당수 미군 철수를 검토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비교적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던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로 이탈리아 군경을 비롯해 31명이 사망할 정도로 사태가 악화되자 미 행정부가 발 빼기 작전을 서두르는 것으로 읽혀진다.

미국의 정책 변경은 우리 군의 파병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상황 변화다. 정부의 파병 추진이 미국의 요청에 따른 것인 만큼 미국이 변한다면 우리의 전략도 조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청와대측은 노무현 대통령이 11일 3000명 이내에서 재건 지원 위주 부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으나 그 같은 지침은 미국의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를 고려한 것이 아니므로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실상 이라크를 통치하고 있는 미국이 철수를 검토하는 상황에서 이전의 판단을 토대로 파병문제를 다루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탈리아 군경에 대한 테러 이후 세계 각국의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도 자위대 파병을 내년으로 미루지 않았는가. 정부가 새로운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파병에 반대하는 국민을 설득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음주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은 이라크 정책을 상세히 설명하고 파병과 관련한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악화된 현지상황은 무시하면서 미국의 필요에 따라 파병을 압박하는 모양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군 철수를 염두에 두고 대신 한국군을 위험지역에 보내려는 것이 아니라면 납득할 만한 근거와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정부는 한미동맹관계를 고려해 고심 끝에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여기에서 안도할 것이 아니라 끝까지 긴장을 풀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요구가 군의 파병능력과 국민의 우려, 전반적인 상황변화를 고려할 때 과도하다고 판단되면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파병부대의 안위가 정부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는 본란을 통해 수차례 파병에 관한 견해를 밝혔다. 미국의 파병 요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 채택, 노 대통령의 파병 결정 등을 거치면서 대통령이 국익과 주권을 잣대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파병은 한순간의 판단이나 소수의 의견에 좌우될 사안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국내 상황은 물론 변화된 국제상황까지 충분히 고려해 현명하게 대응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