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제노바의 13세 소년 마르코가 아르헨티나로 돈 벌러 간 엄마를 찾아가는 파란만장한 여정을 그린 아미치스 원작의 엄마 찾아 3만리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전 세계 어린이와 어른들을 눈물짓게 한 명작동화다. 제노바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다시 코르도바를 거쳐 투쿠만으로 엄마를 찾아가는 소년의 고난에 찬 여정은 걸어서 10분 거리인 등굣길에도 자가용을 태워 달라는 요즘 어린이들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설날인 22일 아침 경기 안양시에 사는 김모군 형제(13, 11세)는 며칠 전 할인매장에서 옷가지와 식료품을 훔치다 서울 남부경찰서에 구속된 아버지를 면회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부모가 이혼한 후 형제는 줄곧 아버지와 지냈다. 사흘 동안을 굶다 시피한 형제는 영하 16.7도의 추위를 뚫고 물어물어 30여리가 넘는 길을 걸어 경찰서에 도착했으나 아버지는 전날 영등포구치소로 이감돼 만날 수 없었다. 경찰간부가 준 5000원으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새우깡을 사 허기를 달랜 형제는 가스와 수도가 끊긴 집에서 설날 밤을 보냈다.
부산에 사는 박모군 형제(7, 2세) 또한 20대 부모에게 위탁 입양된 후 학대를 받아오다 최근 이웃들의 신고로 구출됐다. 형제는 친부모가 가정불화로 합의 이혼하는 바람에 지난 해 11월 부산가정의탁센터에 맡겨졌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위탁부모는 정부로부터 매달 53만원의 양육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들 형제를 입양했다. 형제는 입양 부모가 설을 맞아 고향에 가면서 전기밥통에 밥만 달랑 남겨놓은 채 보일러를 끄고 가는 바람에 2박3일간을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부유층 가정에서는 설 연후 친척과 방문객들로부터 100만원이 넘는 세뱃돈을 챙긴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김군 형제와 박군 형제는 왜 이처럼 춥고 서러운 설을 보내야 했을까. 이른바 국민소득 2만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에서 엄마 아빠 찾아 3만리에 나서는 어린이들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의 책임을 묻기 전에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주변을 한번 둘러볼 일이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