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초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전 여권 핵심부에서 만든 정당개혁 프로그램 안()이란 극비 문건의 내용은 정치권을 긴장시켰다.
정치권 판갈이의 완결은 2004년 총선 정치권의 기본틀 변화에 주력해야 한다 같은 충격적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 뒤 우리 정치권에는 이 문건이 예고한 것처럼 정치권 전체의 판갈이가 진행되고 있다.
여권의 의도는 무엇인가=노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승리 1주년 행사인 리멤버 1219 에서 정치권을 4급수에 비유해 4급수는 목욕도 하면 안 된다. 피부병 생긴다. 큰일 난다며 물갈이 의지를 강조했다.
실제 노 대통령이 분당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도 바로 정치판을 갈아엎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인사권을 갖고 있는 공무원 사회는 기수파괴와 발탁인사를 통해 인적 교체가 가능했지만 선출직인 국회의원의 경우는 총선을 통해서만 물갈이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총선 올인도 나오게 된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 분석이다.
검찰과 시민단체는 판갈이의 두 축?=검찰이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에 대해 불법 대선자금 모금 혐의로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지난해 9월. 대선자금 수사는 그로부터 벌써 5개월여가 흘렀지만 출구조사가 본격화하면서 정치권은 갈수록 긴장 상태다.
과거처럼 검찰수사에 청와대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검찰수사가 결과적으로 구질서의 해체와 인적청산의 기폭제가 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시민단체들까지 나서 낙천운동으로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2004 총선시민연대가 발표한 1, 2차 낙선운동 대상자만도 109명. 명단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배가 주목된다.
수많은 전사자()=이미 20여명의 의원이 구속되거나 수사 대상에 올랐고 30명이 넘는 현역의원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불출마 선언을 했다. 검찰수사로 정치생명이 위태로운 인사들은 공교롭게도 구시대(앙시앙레짐)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이회창()계가 된서리를 맞았다. 서청원() 김영일() 최돈웅 신경식() 의원 등이 모두 친창()계로 지난해 대선을 주도했던 인물.
또 2002년 대선 당시 반노()그룹으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한 후단협 멤버들도 수난을 겪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핵심 인사 역시 개인비리와 대북불법송금사건 등으로 대부분 투옥됐고 한화갑() 의원마저 불법경선자금 모금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노 대통령의 라이벌이었던 이인제() 의원도 한나라당으로부터 영입비용 2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김대중-이회창 시대의 주역들은 거의 퇴출되고 있는 셈이다.
신진세력의 약진=열린우리당에 진입한 유시민() 의원 등 개혁당 출신 인사들은 강한 응집력을 보이며 당중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와 중앙위원 선출, 각 지역 경선과정에서 개혁그룹을 떠받치는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들)로 부상했다.
국민참여 0415를 중심으로 한 노 대통령의 외곽 그룹도 정치권의 인적청산과 세대교체를 추동하는 강력한 힘이다. 공급자 중심의 정치에 익숙해져 있던 기존 정치권은 풀뿌리 수요자들의 취향에 맞게 변신을 강요받고 있다.
판갈이 그 다음은?=포스트 3김() 시대를 위한 해체 및 청산작업과 함께 이미지 정치라는 개성과 대중성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콘텐츠, 개혁의 내용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의 빈 공간은 만들어졌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방향성이나 이념, 그리고 구체적인 인물은 아직 시야에 명확하게 들어오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의 판갈이 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415 총선을 통해 1차적인 정리가 이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