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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인생' 70년대 아이들 사랑그려

Posted March. 16, 2004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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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는 파아란 하늘과 산꼭대기 아담한 집, 장독들과 작은 꽃밭.

이 수채화 사이로 맑은 피아노 소리가 흐른다. 영화 아홉 살 인생의 매력적인 타이틀이다. 영화는 이어 내레이션을 통해 어떤 작가가 말했다. 지나치게 행복했던 아이가 아니라면 아홉 살은 인생을 느낄 만한 나이라고. 당신은 그 나이에 무엇을 하고 어떤 것을 느꼈나?라고 묻는다.

아홉 살은 나이 때문일까 아니면 풍요 때문일까, 무엇 때문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잊었던 꿈과 추억, 사랑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다.

타이틀의 수채화 그림이 루핑(섬유제품에 콜타르 가공을 한 방수지) 지붕의 실사 화면으로 바뀌는 순간 영화는 1970년대 우리네 삶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이 된다. 영화는 아이들이 주인공이지만 이제는 영원히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기도 하다.

소설가 위기철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아홉 살이지만 실제 나이보다 훨씬 조숙하게 살아야 했던 아이들의 얘기를 다뤘다. 궁핍은 역설적으로 성장의 촉진제였다.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더 빨리 커야 했고, 더 일찍 어른들의 세계를 알아야 했다.

70년대 경상도의 한 마을. 싸움 짱 여민(김석), 그를 대장으로 떠받드는 기종(김명재), 여민을 좋아하는 금복(나아현)은 단짝들이다. 어느 날 서울에서 하얀 옷에 구두를 신은 우림(이세영)이 전학 오면서 상황이 바뀐다.

사랑보다는 좋아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여민이 우림에게 관심을 보이자 금복이는 삐치고, 기종이도 싸움에 소극적인 대장의 모습에 크게 실망한다.

이 작품은 티격태격 감정싸움을 벌이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70년대 초등학교와 가난을 떨칠 수 없었던 달동네 풍경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가난과 부유함이 한눈에 드러나는 도시락 반찬, 최고급의 상징인 미제(), 교실에서 사라진 돈과 무식한 범인 색출작전, 와 가 좋아한다는 얼레리 꼴레리. 이런 것들은 세월을 뛰어넘어 어린 배우와 나이든 관객의 마음을 하나로 연결시킨다. 아이들의 귀여운 사랑싸움은 20대의 삼각관계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와 분위기로 덧칠돼 웃음보를 터뜨린다.

영화 속의 작은 아홉 살 인생들. 이들은 지긋지긋한 가난을 이겨냈던 우리의 힘은 바로 옆에 있는 친구와 가족에게 있었다고 강조한다.

과거에 비해 풍요로워졌다는 요즘, 아이들은 여민이보다 더 행복해졌을까?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질문이다. 26일 개봉. 전체 관람 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