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일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천안아산역에서 서울역까지 걸리는 시간은 34분.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에서 자동차나 전철로 서울 도심까지 출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별 차이가 없다. 웬만한 서울 주변보다는 오히려 더 가깝다. 충남 천안시가 서울시 천안구가 됐다는 말도 나온다.
부산 국제시장 옷가게 상인이 아침에 집에서 나와 서울 남대문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떼다가 오후에 자기 점포에서 옷을 진열해 파는 일도 어렵지 않게 됐다.
정부는 30일 서울역에서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속철도 개통식을 갖는다. 고속철도 첫 열차는 4월 1일 오전 5시5분 부산역을 출발해 서울역으로 향한다.
고속철 개통으로 전국은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일 전망이다. 서울부산은 2시간40분, 서울목포는 2시간58분 걸린다.
이에 따라 주거, 레저, 출퇴근 등 국민 생활 전반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경제 분야에서도 항공, 유통, 물류산업의 지도가 달라지고 소비자들의 쇼핑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 전망이다. 직장인들의 출장 등 기업문화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달라지는 쇼핑기업문화=액정표시장치(LCD) 유리를 만드는 삼성코닝정밀유리는 4월부터 반나절 출장을 늘릴 계획이다. 서울역에서 충남 아산시 탕정면에 있는 공장까지 걸리던 시간이 1시간40분에서 4050분대로 대폭 단축되기 때문.
이 회사 장상만 홍보실 과장은 앞으로는 오전에 탕정면에서 일을 하고 오후에는 서울에서 업무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탕정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기혼자 중에는 출퇴근을 서울에서 하는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6월까지 전국 LCD사업을 관장하는 총괄본부를 서울에서 탕정면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기획 및 인사 부서는 이미 이전이 확정됐고 영업, 마케팅 부서를 옮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LG전자는 경북 구미와 경남 창원공장 출장자들이 새마을호 대신 고속철도를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사내() 출장 규정을 손질하고 있다.
쇼핑문화도 많이 달라질 전망이다. 지방의 고속철 역세권 주민들이 수도권의 고급 명품점이나 대형 할인점, 동대문 남대문 등 재래시장을 이용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이에 따라 수도권 유통업체는 기대를 하고 있는 반면 지방 상가들은 우량 고객이 서울로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대구의 D백화점 관계자는 고소득 소비층을 수도권에 뺏기지 않기 위해 의류와 골프류, 화장품류를 중심으로 명품과 수입 브랜드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항공 등 운송산업도 변화 불가피=고속철도 개통으로 항공, 고속버스 등 운송업계의 판도변화도 예상된다.
교통개발연구원에 따르면 경부고속철도의 영향권에 있는 노선의 항공기 이용객은 최고 65% 감소할 전망이다. 일본은 신칸센 개통 후 항공기 이용이 지역에 따라 3090% 줄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김포부산, 김포대구 노선을 대폭 축소한다. 대한항공의 김포대구 운항은 하루 9회에서 2회로 줄어든다. 항공업계는 4월 한 달간 김포부산 노선 탑승객을 추첨해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는 이벤트로 고객잡기에 나서기로 했다.
고속버스업계도 고민하고 있다. 한진 동부 금호 동양 코오롱 등 10개 고속버스회사는 공동으로 운행 횟수를 줄이는 등 대응방안을 마련 중이다.
지방 균형 발전은 과제로=국토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고속철도 개통은 그 자체만 보면 수도권 집중을 강화할 전망이다. 조남건()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화물 수송역할이 없는 고속철도는 고속도로에 비해 지역개발 효과가 낮아 인구가 수도권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며 지방 개발을 위해 별도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