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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축의금

Posted April. 08, 2004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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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국 등 서양에는 결혼 축의금이 없다. 대신 신혼생활에 필요한 살림살이를 선물한다. 이와 달리 동양에는 축의금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베트남에서는 축의금을 내지 않으면 인간관계를 끊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축의금과 관련된 금기도 많다. 중국에서는 흰 봉투에 축의금을 넣어 주면 뺨을 맞기 십상이다. 축의금 액수에 4가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인도에서는 축의금 액수 끝자리가 0이 되면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홀수가 길()하다고 믿기 때문에 1만, 3만, 5만원 단위로 액수가 커진다.

2001년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친척 결혼식에 10만4847원, 친구 결혼식에 4만7057원, 직장 동료 결혼식에 3만4910원을 축의금으로 냈다. 이 정도의 지출에도 조사 대상자의 86%가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결혼 당사자나 부모가 받은 축의금 총액은 1000만원 미만이 48%였다. 5000만원 이상도 있었지만 100명에 1명꼴이었다.

2000년 12월 외할아버지 이규동씨에게서 167억원 상당의 채권을 받으면서 증여세 73억여원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의 법정 진술이 화제다. 그는 167억원은 자신의 결혼 축의금 17억3000만원 등 20억원을 외할아버지가 불린 돈이라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상위 1%가 받는 축의금의 30여배를 받았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축의금으로 17억원을 받았다는 해명이나 20억원을 167억원으로 불렸다는 주장이나 모두 소설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기소 내용대로 재용씨가 받은 돈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었다면 국민으로선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재용씨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기가 막히기는 마찬가지다. 30명이 16억원을 냈으면 1인당 5000만원 넘게 냈다는 계산인데, 그들의 세상에서는 액수에 0이 7개 붙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금기라도 있었나 보다. 더구나 재용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증여 시점은 결혼식이 있었던 1987년 12월이 된다. 처벌하고 세금을 추징할 수 있는 시효가 이미 지난 것이다. 땀 흘려 일하고 성실하게 세금 낸 국민이 허탈하지 않게 제발 소설이었으면 싶다.

천 광 암 논설위원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