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란 힘센 사람이 아니라 힘을 잘 쓰는 지혜와 용기가 있는 사람이지요.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는 인터뷰 때마다 이렇게 말했었다. 1995년 승마사고로 척추아래를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그의 대답은 달라졌다. 아무리 심한 장애가 있더라도 끈기 있게 노력하고 견뎌내는 평범한 개인들이 바로 슈퍼맨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신마비환자 연기를 하고는 실제상황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잘난 척한 적도 있다는 리브였다. 휠체어에 앉게 된 뒤 아무것도 못하거나 뭔가 하려들거나 가운데 후자를 택했다니 역시 슈퍼맨답다. 장애인을 위한 재단을 만들고 장애인 건강보험에 대해 의회에서 증언하는 등 여전히 바쁘고 즐겁게 지낸다. 자신의 꿈은 결코 장애를 입은 적이 없다면서.
얼마 전 서울 예일초등학교에도 작은 슈퍼맨이 탄생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 조태민군(13)이 전교 어린이회장에 당선된 것이다. 피나는 노력 끝에 일상대화를 어눌하게 하는 정도가 됐지만 누구도 그걸 약점으로 꼬집지 않았다. 선거공약도 진솔했다.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어린이가 되자. 어른들은 태민군을 회장으로 뽑은 이 학교 아이들의 순수함에 더 감동했다. 장애에 대한 편견 없이 사람만을 본 어린이들은 슈퍼맨과 사는 법을 아는 민주시민이었다.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 장향숙씨는 지체장애 때문에 20여년간 바깥구경을 하지 못했다. 공교육조차 받은 적이 없다.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와 지방단체는 장애인의 복지를 증진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한 장애인복지법이 사실상 죽은 법이었던 모양이다. 국회에선 장애인 이동시설 및 의석을 만들고 있다지만 이런 시설을 갖출 곳이 어디 국회뿐이랴.
20일 장애인의 날에 맞춰 정부는 내년 하반기부터 역 공항 등 교통시설과 버스 지하철 등 교통수단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반드시 설치하도록 입법예고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비장애인들의 태도가 아닌가 싶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야말로 정신적 장애이며, 장애인 권리가 외면되는 사회야말로 부끄러운 사회임을 다시 새겨야 한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