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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북 특사

Posted April. 30, 200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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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유럽 순방길에 나선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요즘 국제사회의 화제다. 경호원이 여성만으로 구성돼 있다든가, 본국에서 애용하는 천막을 갖고 다니는 등의 모습이 서방 사람들 눈에 기이하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인 면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쏟아내는 말이다. 미국과 중국도 리비아를 본받아 대량파괴무기를 포기하라는 그의 호기로운 외침에선 1986년 미국의 폭격을 피해 다니던 옹색한 지도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카다피의 변신은 순전히 독자적인 결단에 따른 것일까? 리비아의 최근 외교기록을 찾아보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1999년 4월 로커비 사건 혐의자 2명을 유엔에 인도한 것이 본격적인 변화의 시작이었다. 1988년 12월 영국 로커비 상공에서 미국 팬암기 103편을 폭파한 자국 정보요원을 리비아가 12년 만에 내놓게 된 일차적 이유는 경제봉쇄에 따른 어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후 리비아의 행보엔 거침이 없었다. 정상외교 등 활발한 대외 접촉과 함께 영국 미국과 비공식협상을 꾸준히 계속했다.

국가간 비공식협상의 백미로 특사외교가 있다. 국가지도자들이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속내를 교환할 때 활용하는 방법이다. 리비아는 이 같은 방식이 효과를 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러면 남북관계에서도 특사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1970년대에 이후락씨, 1980년대에 장세동-서동권-박철언씨, 김대중 정권 때 박지원-임동원씨 등 많은 이들이 대북() 특사로 나섰지만 북한이 리비아처럼 변할 기미는 아직 없다.

일각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대북특사 역할을 맡기자는 제안이 나왔다. 박 대표도 용의가 있다고 호응하고 나섰으니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다. 성사된다면 박정희-김일성 시대에 이어 2세들이 전면에 나서는 셈이다. 세계의 이목이 쏠릴 만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2년 5월 박 대표의 방북 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박 대표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표시다. 그런 만큼 두 사람이 만나면 남북관계에 무언가 획기적인 돌파구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송 문 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