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무잡잡한 피부에 얼굴 가득 장난기가 배어 있는 이원철군(12)은 요즘 축구 생각뿐이다.
그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 야트막한 동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소년의 집 초등학교(알로이시오초교) 5학년생. 이 학교는 마리아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보육 시설에 딸린 초등학교로, 원철이는 유치원 때부터 이곳 소년의 집에서 컸다.
5학년이 되면서 학교 축구부 주전급 선수로 발탁된 이군은 빨리 내년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6학년이 돼야 붙박이 주전으로 경기에 나갈 수 있기 때문. 2002년 월드컵대회 전만 해도 요리사 대통령 생물학자를 놓고 고민했던 이군의 장래 희망은 이제 축구선수다.
3일 오후 3시반. 정규수업을 마친 18명의 축구부원들은 어김없이 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이 학교는 체육시간뿐만 아니라 방과 후 클럽활동으로 축구를 적극 장려한다. 그 덕분에 1975년 개교 이래 축구부는 전국 또는 시도 대회에서 20여 차례 우승하며 명문의 전통을 이어왔다.
패스 연습이 끝나고 슈팅 연습. 동료가 손으로 공을 높이 띄워주면 발리킥으로 골문을 향해 뻥뻥 내지른다. 발목에 좀 더 힘을 줘야지 잘했어. 계속 그렇게 해 임철호 감독(30)의 목소리가 매섭다.
명지대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6년 전 감독을 자청한 임씨 역시 소년의 집 출신. 학교를 다니던 80년대 중반 임 감독에게 축구는 바깥세상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학교측이 학생 보호 차원에서 학교 밖 출입을 통제했기 때문에 대회에 출전하느라 가끔 외출하는 축구부는 학생들 사이에 단연 인기였다. 임 감독은 일부러 눈물을 쏙 뺄 정도로 아이들을 강하게 몰아친다고 했다. 아이들이 24시간 학교의 보호 아래 있기 때문에 다른 학교 학생들에 비해 심약하다는 것.
다른 학교 축구선수처럼 경기 때마다 음식을 싸들고 응원 오는 부모가 없는 제자들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임 감독은 그때마다 모질게 마음을 다잡는다. 언젠가 아이들은 소년의 집을 떠나 험난한 사회 속에 발을 내디뎌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황오연 교장은 축구는 체력과 자신감을 키워줄 뿐 아니라 경기 규칙을 통해 시민정신을 몸에 배게 한다고 말했다.
요즘 초등학생 대부분의 관심사는 컴퓨터 게임과 연예인. 하지만 이 학교 학생들에게는 남의 얘기다. 축구만이 거의 유일한 놀이이자 외로움을 극복하는 수단이다.
지난해 5월 부모가 이혼한 뒤 아들을 키울 능력이 없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소년의 집에 온 권욱한군(초등 6년)은 넘어지지 않고 악착같이 뛰는 박지성 같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수줍음이 많은 김인수군(초등 6년)은 공을 차는 시간만큼은 부모를 보고 싶은 마음도, 외로움도 잊을 수 있다며 나중에 축구선수가 돼 돈을 많이 벌면 부모를 찾겠다고 했다.
소년들은 공을 차며 아픔을 함께 내지르고, 또 미래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