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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티 섬

Posted May. 12, 2004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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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어느 날.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상경하던 길에 차 안의 라디오에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의 선율. 영화 러브 어페어(Love Affair)의 테마였다.

시간은 오후 5시. 마침 지나던 곳은 전북 부안이었다. 그 선율을 듣는 순간. 느닷없이 변산 바다의 노을이 생각났다. 그리고 주저 없이 부안 나들목을 나와 격포항으로 차를 몰았다. 그날 채석강 바위에 홀로 앉아 감상한 해넘이와 노을은 평소보다 훨씬 감동적이었다.

출장으로 지친 나를 가을 바다로 내몬 영화 러브 어페어.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음악이 들려오자 문득 영화가 촬영된 남태평양 섬 타히티의 풍경이 떠오르며 동시에 내 기억 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타히티의 아름다운 노을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모레아 섬 뒤편의 하늘과 바다를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환상적인 노을과 그 바다를 수많은 카누가 수놓는 아름다운 저녁 풍경이.

남태평양의 작은 섬 타히티. 그 섬은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의 섬이다. 어느 영화였더라. 한바탕 사랑싸움 끝에 토라진 여인이 봉투 하나로 일순간 남자 품에 뛰어드는 장면이 있었다. 그 봉투 안에 든 것은 다름 아닌 타히티 행 항공권이었다.

화가 고갱 같다 감탄

이 장면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누구든 가보라. 그리 되고도 남음을 인정할 것이다. 더 이상 아름다운 풍경과 편안한 휴식을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곳 자연의 빛깔이 그렇고, 환초()와 라군 섬의 경관이 그렇고, 석양과 노을에 물드는 바다와 하늘이 그렇고, 에덴동산이 예 아닌가 싶게 편안한 리조트가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최고를 친다면 역시 낙조와 노을이다. 타히티 섬에서 서쪽으로 15km가량 떨어진 멋진 섬 모레아 뒤로 떨어지는 석양. 화산폭발로 생겨난 들쭉날쭉한 뾰족 봉 덕분에 폴 고갱(18481903)으로부터 고성 같다고 표현된 이 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노을이다.

석양이 지면 그 해를 향해 카누가 질주한다. 수면까지 빨갛게 물들인 그 붉은 해를 향해 수많은 카누가 힘차게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그리고 해가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면 그 노을 속에 한 점이 된 듯 멈춰 선다. 수많은 카누로 수놓인 노을 진 바다. 타히티의 해넘이는 이처럼 한 폭의 그림이다.

타히티의 모든 섬은 화산폭발로 수면에 드러난 것들이다. 무려 118개. 5개 군도로 나뉘는 이 섬은 그 수도 많지만 차지하는 바다 면적 역시 넓다. 유럽대륙에서 러시아를 제외한 면적에 해당될 정도다. 양끝간 거리도 2000km나 된다. 타히티는 이 118개 섬 가운데 하나다. 이 모든 섬을 포함하는 국가의 명칭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다. 프랑스령이란 재정 외교 국방권을 프랑스정부가 행사하는 프랑스의 해외영토를 말한다.

타히티 섬의 중심도시 파페에테(수도). 파아아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제트프롭(제트엔진 프로펠러 추진) 항공기의 창문을 통해 바다 풍경이 투시된다. 이어 5분 만에 다다른 모레아 섬. 영화 반지의 제왕에나 나올법한 신비스러운 산악 풍광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섬이다.

일주도로를 따라 야자수 우거진 섬 주변을 달리기를 30분. 한 뾰족 봉을 배경으로 펼쳐진 초원에서 말이 풀을 뜯는 아름다운 풍경이 숲 주변에 펼쳐진다. 영화 러브 어페어에서 워런 비티와 아네트 베닝이 다정하게 말을 끌고 가던 그곳이다.

노을 너머 보라보라섬 스노클링 천국

118개 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보라보라는 타히티로부터 45분 거리다. 환초 가운데 있는 이 섬은 산호 띠에 포위된 형국. 활주로는 섬이 아닌 주변의 모투(Motu산호가 드러나 이뤄진 섬)에 있어 여행자는 활주로가 있는 섬에서 착륙한 비행기에서 내려 카페리로 섬에 간다. 산호를 가루 내어 닦은 하얀색 활주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산호활주로다.

공중에서 내려다보이는 보라보라 섬의 바다 풍경. 기하학적 모양의 환초와 환초를 둘러싼 작은 모투, 그리고 환초와 모투 사이의 호수 같은 바다 라군, 그리고 그 바다에 떠있는 하얀 세일보트. 지상의 어떤 것도 닮지 않은 보라보라 섬의 장관. 지상의 어떤 풍경도 압도할 정도다. 그 바다에서는 스노클링도 마찬가지다. 상어 떼와 가오리 떼가 몰려와 주위를 맴도는 가운데 해저비경을 감상한다. 여기서는 사람도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



조성하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