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에 외로이 위치한 나우루는 나지막한 산호초 나라. 18세기 말 이곳에 들른 영국인들이 유쾌한 섬이라 부를 정도로 기온이 온화하고 풍광이 빼어났다. 면적은 고작 21km지만 인광석이 풍부했다. 해양생물 화석과 새의 배설물이 합쳐 만들어진 인광석은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이를 수출해 얻은 돈 덕분에 1인당 국내총생산이 현재도 5000 호주달러다. 30년 전에는 5만 호주달러였다. 인광석 수출대금 중 절반은 중앙정부, 절반은 지방정부와 지주 몫으로 돌리고 주민에게는 사회복지 혜택을 넉넉하게 베풀었다.
문제는 정부의 돈 관리에 있었다. 호주 시드니 등 세계 도처의 부동산 투자가 기대에 어긋났고, 부패 부정 의혹도 꼬리를 물었다. 궁한 나머지 한때 러시아 신흥 마피아의 돈을 세탁해주는 금융기관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국제 압력에 밀려 폐쇄했다. 최근에는 1만2000여명의 주민에게 국가 파산위기라는 청천벽력이 닥쳤다. 국영 항공사가 보유하던 점보제트기까지 해외 채권자의 손에 넘어갔다.
이제 기대하는 돈줄은 연간 700만달러의 호주 정부 보조(불법 이민자 수용대가)와 영국 호주 뉴질랜드의 보상금(과거 환경파괴 대가), 그리고 고기잡이가 고작이다. 정치마저 한심하다. 정원 18명의 국회가 여야 9명씩 갈려 몇 달째 헛돌고 있다. 한때 무궁무진으로 여겼던 인광석은 무분별한 채광으로 고갈돼 가고, 남은 것은 황량하게 파헤쳐진 섬의 중앙부를 둘러싼 폭 150300m의 회랑지대뿐이다.
한반도는 나우루보다 1만배나 넓고, 남한만의 인구로도 4000배나 많지만 천연자원이 없다. 대신 인적자원이 있어 세계 13위 경제규모를 이룩했다. 한때 우리 국민은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투입한 기록 보유자들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노동 강도가 떨어지고 근로시간은 단축되고 있다. 유일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력의 보물창고를 채우기보다 털기에 열중한다. 대신 교육현장의 평준화, 직장의 근무일수 줄이기, 정부의 분배우선정책이 개혁의 이름으로 추진된다. 자원이 고갈되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진 나우루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김 병 주 객원논설위원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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