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원에 다녀왔다. 문화재 보호와 생태보전을 위해 28년 동안 일반인 출입을 금했던 반도지()와 옥류천() 일대까지 둘러보니 감회가 새롭다. 2시간반이 꿈처럼 지나간다. 그 옛날 왕이 비빈()과 함께 산책하던 구중심처()를 천천히 걷다보니 난세라도 이 시절에 살고 있는 것이 천만다행으로 느껴졌다. 조선왕조 시절 백성으로 태어났다면 감히 들어가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 아닌가.
비원은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임금들이 거처했던 창덕궁의 후원()이다. 일반 백성이 들어갈 수 없다는 뜻에서 금원()이라고 했으나 일제가 비원()으로 불렀다. 임진왜란으로 한양의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1610년(광해군 2년) 동궐()이었던 이곳을 다시 지어 1868년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200여년간 정궁()으로 사용했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이 좌우대칭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 데 비해 창덕궁은 산자락을 따라 건물들이 골짜기에 안기도록 한 비()정형적 조형미가 특색. 그중에서도 특히 비원은 자연친화적이고 아기자기한 한국미의 전형이다.
문화재관리청이 5월 1일부터 하루 3회씩 반도지와 옥류천 일대까지 비원의 관람범위를 확대하자 반응이 대단하다. 5월에는 인터넷 예약을 받기 시작한 지 하루 만에 한 달분 예약이 끝났고, 6월에는 매일 하루치씩 예약을 받고 있으나 0시경부터 2, 3분도 지나지 않아 당일분 예약이 마감된다. 가족 또는 직장 단위의 단체 예약도 적지 않다고 한다. 7월부터는 매일 오전 9시부터 한 달분 인터넷 예약과 함께 20%의 현장 판매를 곁들일 계획이다.
미()는 소유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의 것이라고 금아 피천득( ) 선생은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비원은 안목 있는 모든 이들의 것이다. 직접 들어가 산책해 보지 않고는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훌륭한 문화유산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한다. 160여종 29만그루의 수목과 오색딱따구리, 소쩍새, 원앙 등 40여종의 조류가 살고 있는 생태의 보고()이기도 하다. 설령 수도를 충청권으로 옮긴다 해도 비원 때문에 따라가지 못할 듯싶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