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가 남파간첩과 빨치산 출신 비전향장기수 3명이 사상전향 공작과정에서 고문당해 숨진 사건과 관련, 민주화운동이라는 결론 을 내린 데 대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보수단체를 비롯한 학계와 대다수 국민은 사상 전향을 거부하다 사망한 간첩을 민주화 인사로 미화한 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반국가적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앞서 의문사위는 1일 전향 강요는 기본적으로 불법이었고 이들이 인간으로서 기본권리를 침해당한 데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전향제도나 준법서약서 등 악법이 철폐된 것은 민주화에 기여한 것이라고 밝혔다.
논란의 핵심은 북한체제를 추종한 남파 간첩과 빨치산 출신이 남한사회의 민주화운동에 기여했는지 여부.
서울대 안경환() 법대 학장은 미란다 사건을 계기로 피고인의 법적 권리를 보장하게 됐지만 미란다는 사실 악질적인 사람이라며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것이 그런 사람들의 투쟁을 통해 가능했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말했다.
국민대 김동훈() 법대 학장도 의문사진상규명 관련법에 따르면 민주화운동은 3선 개헌 이후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한 것으로 정의돼 있다며 1950년대 남파 간첩이 북한체제에 대한 충성과 자신의 신념 때문에 죽은 것인데 그 과정에서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고 인정한 것은 견강부회라고 지적했다.
반면 서울대 한상진(사회학) 교수는 그들이 개인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회유나 전향 압력을 거부했던 것은 보편적인 가치와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이제 우리 사회도 이념보다 인간을 존중한다는 보편적 가치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의문사위측은 2일 저항의 행위를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행위로 본 것이라며 그 배경에는 사상양심의 자유를 확대하고 전향제도 폐지에 기여했다는 점이 깔려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고 했던 간첩이 민주화인사라면 그들을 잡거나 신고한 사람은 민주화를 억압했다는 얘기냐(한사랑)는 등 네티즌들의 항의 글이 폭주했으며 의문사위 홈페이지는 한때 다운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