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제정러시아의 외교관계 수립 120주년을 맞아 러시아 외무부가 8일 산하 문서보관소에 소장된 한국 관련 고문서 40여점을 공개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모스크바 주재 한국 외교관과 언론사 특파원 등을 외교박물관으로 초청해 이 자료를 보여줬으며 북한측에도 따로 공개했다. 조만간 관련 자료집이 모스크바국제관계대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공개된 자료에는 1884년 7월 7일 체결된 조러수호통상조약() 원본(사진) 등 양국간 문서와 각종 서신 및 조선 주재 러시아 공사관과 본국 정부 사이에 주고받은 전문과 훈령 메모 등이 포함돼 있다.
수호통상조약문은 한-러수교 10주년을 기념해 2000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회를 통해 이미 공개됐다. 그러나 일부 자료는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돼 한-러 관계사 연구뿐 아니라 19세기 말 한반도 정세를 엿볼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1885년부터 10년 넘게 조선 주재 공사로 일했던 카를 베베르의 활동상을 담은 자료들이 눈길을 끈다. 조선과의 수교를 주도한 베베르 공사는 능란한 외교수완으로 조선 정부 내에 친러파를 만드는 등 대한제국 말 외교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다.
자료 중에는 1895년 고종이 러시아 니콜라이 황제에게 베베르 공사가 조선에 더 근무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도 있어 그에 대한 조선 왕실의 신임이 두터웠음을 보여준다.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이 베베르 공사의 치밀한 계획 속에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자료도 있다. 당시 그가 본국에 보낸 비밀 전문에는 병력 파견 요청과 러시아 수병의 한양 도착 보고, 아관파천 성공 보고 등이 들어 있다. 고종은 1897년 니콜라이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 러시아가 자신을 보호해 준 것에 감사했다. 아관파천 성공으로 친러 내각이 들어서면서 각종 이권이 러시아에 넘어갔다. 이번에 공개된 함경도 경원()의 사금 채광권을 러시아에 이양하는 내용을 담은 한글 문서는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